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김용길의 미디어 스토리 <7>


 작년 연말에 개봉한 <꾸뻬 씨의 행복여행>.



2013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에 등극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꾸뻬씨의 행복여행>(Hector and the Search for Happiness, 2014)이 2014년 연말에 개봉됐다. “나는 왜 행복하지 않고 우울한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노크하는 환자를 매일 만나고 있는 정신과 의사 헥터. 그 자신도 행복하지가 않다. 헥터가 진정한 행복의 비밀을 찾아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어드벤처 힐링무비’다.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눈이 즐거운 영화다. 행복의 비밀을 찾기 위해 런던 상하이 티벳 남아공 LA 등지를 오가면서 겪는 스토리는 다채롭다. 행복의 비결을 찾아보려는 에피소드가 버무려져 갓 잡은 생선처럼 팔딱팔딱 생동감이 넘친다. “많은 이들은 자신의 행복이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면 행복은 멀어진다.” 주옥같은 행복의 명제가 명장면마다 삽입되는데 깨소금 맛이다.
2012년 7월 개봉된 영국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 2012)은 황혼기 남녀 7명의 인도생활 정착기를 다룬다. 영국에서의 고단한 삶을 정리하고 생의 휴식을 찾아 인도 시골 메리골드 호텔에 머물게 된 이들이 각양각색 개성과 사연을 내뿜으며 노년의 삶을 긍정해가는 로맨스물이다. 영화에는 “두려워해야할 것은 현재와 똑같은 미래일 뿐. 변화가 온다면 기뻐하라.”는 등의 명대사가 줄줄이 나온다. 그중 발군은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 질 것이다. 괜찮지 않다면 그건 아직 끝난 게 아니다.(Everything will be alright in the end. So if it is not alright, it is not yet the end)” 라는 명문장.
영화는 스토리에 영상과 대사 음악 음향을 버무린 종합예술이다. 객석에서 2시간동안 꼼짝하지 않고 스크린에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 덕분이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영화 스토리를 한 줄로 압축한다면 위 대사가 대변한다. 죽음만 기다리는 조용한 노년으로 보내지 말고 자기 내면에 솔직한 도전을 해보라는 긍정의 스토리가 가득하다.
왜 사람들은 멋진 스토리에 열광하는 걸까. 사람들이 즐기는 스토리 구조는 고난에 빠진 주인공이 위험을 무릅쓰면서 끝없는 도전 끝에 위대한 성취를 이뤄내는 해피엔딩이 기본 얼개다. 독자나 관객은 주인공의 도전과 악당(악마)의 음모에 감정이입하면서 긴장한다. 스토리는 사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다.
영국 소설가 포스터(E. M. Forster)는 ‘왕 사망 ? 왕비 사망’이란 팩트를 ‘왕이 죽었고 그다음 왕비도 죽었다’는 스토리로 바꿀 수 있고 더 나아가 ‘왕이 죽자 슬픔에 겨운 왕비도 죽었다’는 사건 플롯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며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실들의 단순 나열은 정보의 무작위적인 배치일 뿐이다. 시간적인 순서에 의해 선후 인과관계를 부여하면 궁금증을 유발하는 스토리가 되고 논리적인 인과관계로 입체적인 플롯 편집을 하게 되면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대본이 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언변도 논리적인 설득도 아니다. 그것은 이야기라는 옷을 입은 진실이다. 때론 어눌할지라도 당신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대화의 거리와 말의 벽을 넘어,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세계적인 스토리텔링 전문가 아네트 시몬스의 말이다. 근거를 갖춘 이야기의 향연은 사람들을 절로 모여들게 한다. 보편적 감동을 동반한 지적인 스토리는 대중의 뇌리에 쏙 들어온다. 정보-뉴스-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매력적인 콘텐츠가 되려면 스토리를 입혀야 한다.
1. 자소서, 스토리텔링으로 한 편의 영화처럼 써라
 대입 전형에서 자기소개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논술 학원 등 사교육 전문업체들이 건당 50만~100만원까지 받으며 맞춤형 자기소개서 대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은 대필된 자기소개서를 걸러내기 위한 시스템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기소개서는 대학진학 후 하고 싶은 일과 그 일을 하기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한 근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과정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나만의 스토리가 압축된 개성 있는 자기소개서다. 주인공인 나의 주관과 철학을 분명히 하고 어떤 모험과 도전을 해보았는지를 6하 원칙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왜·어떻게)을 따라 기술한다. 막연한 추상적 다짐은 피하고 구체적 경험 속에 얻은 교훈으로 결론을 맺는다. 체험한 실제 케이스도 단순 나열하지 말고 나의 성장에 기여한 순서대로 인과관계로 엮어야 설득력이 생긴다.
취직 면접 때 자기소개도 마찬가지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면접 속에서 판에 박힌 앵무새 답변에 면접관은 지쳐있다. 무미건조한 단답형 자기소개는 탈락의 지름길이다. 이럴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 내 인생을 뒤흔든 사건, 내가 이 회사에 꼭 입사해야하는 이유, 한국인에게 꼭 필요한 신제품 구상 등의 차별적 스토리로 면접장 분위기를 화끈하게 바꿀 수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갈고 닦은 스토리가 준비된 응시자는 순발력 있게 ‘문제의식→ 사건전개→ 위기대처→ 대안제시’ 순으로 표현하면 주목받는 자기 소개가 될 것이다.
2. 스토리가 나의 브랜드다.
청개구리를 떠올리면 비 오는 날 잎사귀에 앉은 연두색 앙증맞은 꼬마개구리가 연상된다. 동시에 청개구리에 얽힌 전래동화가 떠오른다. 엄마 말씀을 덮어놓고 반대로만 행하던 아들 청개구리. 산에 묻히려고 냇가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엄마 청개구리. 뒤늦게 불효를 뉘우친 청개구리가 유언대로 냇가에 엄마를 묻고는 비가 올듯하면 엄마 무덤이 떠내려 갈까봐 개굴개굴 슬프게 운다는 스토리다. 청개구리는 타인의 뜻을 무조건 반대하는 우화적 스토리의 상징이 된다. 이솝우화 덕분에 거북이는 성실히 노력하는 동물이 되고, 속담 탓에 꼴뚜기는 어물전 망신의 대명사가 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것처럼 나만의 이야기를 묵혀둘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스토리로 발굴하고 편집할 필요가 있다. 스토리 편집력이 추가된 자기소개서, 제안서, 기획서는 인상적인 스토리에 목마른 심사위원들에게 큰 환영 받을 것이다.
애플 신제품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여전히 묻어나온다. 미국 최초 흑인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에게는 어린 시절 좌절을 딛고 일어선 불우 청소년의 롤 모델 스토리가 배어나온다. 현대그룹를 창업한 정주영 회장이 남긴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해보긴 해봤어?”란 명언 속에는 오롯이 ‘정주영 스토리’가 살아 숨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