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김용길의 미디어 스토리 <6> 인터스텔라 속 로봇



인듀어런스호 우주대원들과 인공지능 로봇’케이스’가 태양계 밖 바다행성에 도착해 탐사활동을 하고 있다.

수백m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들이닥친다. 생사가 엇갈린다.


미디어학자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1964년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선언하면서 미디어는 인간에게 유용한 기술적 도구에 머물지 않고 끝없는 인간의 확장으로써 기능한다는 통찰력을 과시했다. 인간은 미디어를 통해 시각의 세계, 촉각의 세계, 더 나아가 관계의 세계를 확장해가고 있다. 미디어는 사회적 인간의 핵심 도구이자 존재 확장 네트워크인 것이다.

맥루한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디어’는 TV 신문 모바일기기 등의 매스미디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인간이 고안한 기술이나 도구, 또는 신체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책은 눈의 확장이고, 바퀴는 다리의 확장이며, 옷은 피부의 확장이고, 전자센서는 중추신경 계통의 확장이다. 감각기관의 확장으로서 모든 매체는 그 메시지의 강약에 상관없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페이스북 앱 하나로 ‘페친들’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고 서로의 세계 속으로 관여하는 현상을 보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최신 SF 대작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인터스텔라>는 영화사상 최초로 블랙홀과 5차원 세계를 과학이론을 바탕으로 3차원 영상으로 구현한다. 그 압도적 비주얼은 정교하게 설계된 가설과 음악 음향과 맞물려 관객 전체를 우주인의 반열로 올려놓는다. 바다와 육지, 도시와 시골, 문명과 오지, 실내와 야외 등 지구촌 오대양 육대주 차원에만 갇힌 지구인의 상상력을 태양계마저 벗어난 다른 은하계로의 확장으로 이끈다.
영화는 2개의 가설을 관객에게 그물로 던지며 출발한다.

# 가설1

가까운 미래. 기술발전과 경제성장만 내세우던 세계는 지구적 규모로 번져오는 자연재해에 두 손 들고 만다. 70억 인류는 자연과 기후를 망칠 수는 있어도 원래상태로 되돌릴 순 없는 욕망덩어리였기 때문. 대륙적 규모로 불어오는 거대 황사는 병충해 확산과 맞물려 초미의 식량 부족 사태로 이어진다. 생명의 발아 공간인 흙이 메마른 유해 흙먼지로 변해 식물 종자를 멸종시키고 인류가 먹을 식량은 동이 나 폭동 발발 직전이다. 밀과 쌀이 사라지고 옥수수밭만 겨우 남아있다. 켜켜이 쌓이는 먼지로 사람들의 폐는 병들고 개별적 국가체제와 국제기구도 허울만 남아있다. 지구 중력의 법칙마저 이상 조짐을 보인다. 이제 지구 멸망을 점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만 간다.


# 가설2

슈퍼파워 미국의 예산만 잡아먹는 주범으로 몰린 미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예산을 빼앗기고 해체 당했으나 비밀리에 복원되어 인류 구원 프로젝트를 가동시킨다. 정확히 말하면 현존 인류 전체를 구조하는 작전이 아니다. 인간 생존 가능 환경을 가진 ‘제2의 지구’를 찾아내 소수의 선택된 인류 대표들만 그 곳으로 집단이주하는 계획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중력의 비밀을 풀어야 한다. 거대한 지하기지 전체가 우주정거장으로 설계된 비밀건설공사가 진행 중이다. NASA는 ‘제2의 지구’가 될 만한 행성 발견의 임무를 띤 12명의 과학자들을 수년전 선발대로 태양계 너머로 보냈다. 드디어 미지의 우주 공간 12곳의 후보 행성 가운데 3곳에서 발신하는 희망의 전파 신호가 잡혔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2013)는 무중력의 우주 공간을 영화적으로 재현해냈다. 인공위성에 홀로 남게 된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의 우주 유영기는 1시간 30분 내내 관객을 우주 속을 떠돌게 했다. 망가진 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본 지구는 너무 아름다웠다. 라이언 스톤 박사가 안전한 지구 귀환에 만족하는 인물이라면, <인터스텔라>의 주인공들은 오염된 지구에서 더 이상 생존 불가능한 인류를 구출하기 위한 선발대로서 태양계를 벗어난다.
환경오염에 따라 흙먼지 속을 뒹구는 지구엔 산소마저 사라지고 있다. 그 탈출구로써 머나먼 우주는 상상력의 천장을 뚫고 확연하게 가까이 다가온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표작들은 결코 쉽지 않은 철학적 주제들을 담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인간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더 나아질 수가 있는가. ‘꿈꾸는 나’는 꿈인가 현실인가. 그의 영화는 늘 상식을 뒤집는 지적 유희를 보여준다. 일상을 깨부수는 기상천외한 설정 속에서 날카로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아침마다 신문을 챙겨 읽으며 묵직한 유선전화로 통화했던 시절. 디지털 다매체 멀티미디어 시대의 도래는 꿈만 같았다. 어느 순간 인류는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2015년에 스마트폰 사용자 수가 25억 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세계 인구의 35%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셈. 10년 후 2025년, 인류는 어떤 미디어를 사용하면서 우주적 네트워크 생활을 할까.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인공지능 로봇이 그 주류 미디어의 대변자가 된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막대기 4개로 이뤄진 미래 로봇 형상은 SF영화의 전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마주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무의식적 오마주가 있을 것이다. 로봇 디자인도 그렇다. 타스(TARS)와 케이스(CASE)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가능한 가장 간단한 모습으로 고도의 지능을 나타낼 수 있는 디자인을 선택하고 싶었다. 군더더기 없는 기능와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인공지능 비석 ‘모노리스’를 닮았고 그 본류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본 딴 것이다. 주인공들이 인간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로봇 ‘타스’와 ‘케이스’의 디자인은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인체를 닮은 얼굴과 팔 다리로 이뤄진 휴머노이드형 로봇과는 정반대다. 평소 컴퓨터인 척 서 있다가 필요하면 4개의 구성요소를 팔다리처럼 부려 직립보행부터 아크로배틱까지 척척 해낸다. 바다행성에서 허우적대는 주인공을 구출하기도 하며 블랙홀 속 중력의 법칙 그 비밀을 해독하기도 한다.
먼 지구별과의 커뮤니케이션 송수신을 도맡아 중계해주고 우주여행 모든 상황을 실시간 조종 계산하여 체크 분석하는 슈퍼컴퓨터다. 게다가 사람 냄새나는 인간적 말투까지 흉내 내는 이들은 진지한 사람들의 대화 도중 유머를 구사하며 끼어들기도 한다. 물론 결정적 순간이 오면 사람 흉내를 중단하고 정확히 로봇의 길을 간다.
 <인터스텔라>의 로봇들에 대한 시선은 일상생활의 집사 역할을 하는 생활도우미로서 믿고 의지하는 따뜻함이다. 현대인들이 한시라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가까운 미래의 인류는 도우미로봇과 24시간 생사를 함께 하는 것은 아닐까. 인공지능 로봇이 대신 전화 걸어주고 정보 브리핑해주고 쇼핑해주고 인간관계마저 조언해줄 듯하다. 외로운 이에겐 친구 이상의 역할도 가능하리라. 나의 모든 과거 현재 미래를 담아둘 블랙박스이기도 하다. 내 명령에 의해 나의 일생을 10권의 책으로 편집해서 제본까지 해주리라. 잠도 자지 않고 주인을 지켜봐주는 CCTV처럼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리라.
음. 지금까지 ‘미디어낙관주의’에 의한 필자의 개인적 상상이었다. 그런데 모든 낙관주의 뒷면은 비관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