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26>


그위니스 몬테네그로는 호주에서 15년간 에스코트로 일했다. 에스코트(escort)는 사전적 의미로 사교모임 동반자를 뜻하지만 사실상 매춘부를 이른다.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한 남자는 무려 1만 91명.(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즐겁던 일터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을 파는 일이 정신을 파는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몬테네그로는 서른세 살에 은퇴했다. 이 이야기는 성(性)의 얘기가 아니라 정(情)에 관한 슬픈 독백이다. 또한 일터가 삶터이지만, 동시에 쉼터여야 한다는 것을 방증한 실례(實例)다.
사람은 평생 수만 명과 인연을 맺는다. 만남, 이별, 사랑, 결혼은 사회적동물이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나 또한 편집을 하면서 1만 명의 인연을 만났다. 하지만 스마트폰 주소록에 남겨진 이름은 716명. 물론 이 모두가 ‘술이 필요할 만큼’ 외로울 때 달려와 술이 되고 말이 되는 사람들은 아니다. 얕고 깊고 밭고 불안정하다.
돌이켜보면 이별한 사람이 얼마인지 헤아려지지가 않는다.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과 헤어질 것인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겨울을 이별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그 차가움의 온도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고하고 있다. 버려지든, 버리든 이별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다. 더구나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을 피해가기가 먼저 어려운 일이고, 그 사람과 악연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기가 또 어려우며 결국 잘못된 인연으로 후회하지 않기가 제일 어렵다.
지금 여러분의 시계는 어디를 가리키는가. 고독日, 슬픔時, 아픔分, 절망秒는 아닌가. 사람들과 만나고 이별하고, 또 다시 만나고 이별하는 시간들이 고통스럽지는 않은지…. 슬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아프지 않은 인생도 없다. 지금까지 몇 번은 사유(思惟)에 의해 탈출했고, 몇 번은 자유(自由)에 의해 탈옥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떠날 수 없는 나이, 떠나서는 안 될 나이가 돼버렸다. 커버린 몸과 퇴화된 시간 사이에서 절멸의 분초를 살고 있는 것이다.
편집의 ‘가치’와 편집기자의 ‘같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군상들이 의외로 많다. 편집은 ‘가치’ 있는 일이고, 이 일을 하려면 ‘같이’ 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주야장천(晝夜長川) 변명을 들어줄 수도, 설명을 할 수도 없다. 기꺼이 마음을 여는 일이 많아지면 견뎌야 할일들도 많아진다. 가끔 주변인들에게 ‘같이’갈 것을 종용하곤 한다. 그런데 결코 행복해하지 않는다. 그냥 바라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턱 막히는데 불행만 이야기하고, 불행해질 일들만 이야기한다. 마음을 열었더니 마음을 역이용하는 일이 흔하고, 열정을 주었더니 열정을 악용하는 일도 빈번하다. 거기에서 파생된 오해는 기본이고 소문은 옵션이다. 소문과 진실사이, 오만과 편견사이, 그 중간지대에서 우린 행불행을 치열하게 견뎌내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전국 신문사 편집식구들이 반(半)으로 줄었다. 어둠처럼 서서히, 그림자처럼 조용히 치러진 은사(隱事)여서 아무도 그 ‘멸종’을 몰랐다. 옆구리 시린 그 겨울이 되자 우연히 부재(不在)를 알게 됐을 뿐이다. 오너는 더 영악해졌고, 편집기자는 더 연약해졌다. ‘진정한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는 고언은 바람처럼 떠났다.
오늘도 안녕을 묻는다. 정확히 말하면 안녕하냐고 묻는다. 그들은 안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안녕한 게 아니고, 안녕한 척 하는 것이다. 같이 갈 것인가? 가치 있는 동반자가 될 것인가? 이제 ‘같이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운명이란 때로는 사소한 사건, 우연한 만남에 의해 결정된다.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삶의 길, 어떤 게 옳은지 정답은 없다. 오히려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만남과 헤어짐은 철저하게 질량불변의 법칙으로 간다. 한쪽을 비우면 한쪽이 채워지고, 한쪽을 버리면 한쪽이 다가온다.
세상의 벽이 자꾸 높아진다고만 말하지 마라. 자신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 갑자기 안녕을 고하지 마라. 그것 또한 자신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같이 가자, 가치 있게 가자. 그것이 같이 가기 위한 가치다.
P.S)‘오늘도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