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 도시가 먹는 법 <12> 대전


대전은 대한민국의 중간에 있다. 교통이 발달했고 시장이 많다. 대전역 주변으로 시장과 여관 식당들이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다. 2009년 대전시에서 대전 6미(味)라 불리는 대전을 대표할 만한 여섯 가지 음식. 구즉도토리묵, 대청호민물매운탕, 돌솥밥, 삼계탕, 설렁탕, 숯골냉면를 발표했지만 대전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는 상당히 달라 많은 사람들을 당황케 했다. 대전을 대표하는 서민음식인 칼국수가 빠졌기 때문이었다. 대전사람들은 칼국수를 사랑한다. 특히 대전역을 중심으로 한 구도심에는 수십년된 칼국수집들 국수발처럼 많다. 그 중 대흥동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이곳의 재개발 때문에 10여개 넘던 국수집들이 반으로 줄어들고 대전 얼큰이 칼국수를 만든 ‘공주칼국수’의 주인은 건강의 이유가 겹쳐 아예 문을 닫았다가 2012년 봄에 대흥동 오토바이거리 주변에 새롭게 자리를 잡고 다시 문을 열었다.
1975년에 문을 연 공주분식의 칼국수가 대전 사람들의 열렬한 사랑 속에 인기를 얻자 대전 중구 대흥동 수도산로를 따라 1980년대 초반부터 칼국수집이 하나 둘씩 자리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칼국수골목이 형성된다. 하지만 대흥 1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으로 이 일대가 재개발되고 공주분식이 문을 닫자 가게들은 처음 생겼을 때처럼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대전의 칼국수는 공주분식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공주분식 이후에 생겨난 대전의 칼국수집들의 특징은 커다란 대접에 한 가득 담긴 면발과 매콤한 맛과 모양새를 내는 붉은 색 육수다. 붉은색 육수는 멸치육수를 기본으로 한 진하고 구수한 맛에 매콤한 고춧가루와 후추, 그 위로 가득한 참깨와 김 가루, 대파 그리고 대전칼국수 집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쑥갓 등이 더해져 속칭 ‘얼칼’이라 불리는 매운 대전 칼국수의 전형을 만든다.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 전의 공주분식은 얼큰한 대전 칼국수의 맛의 설계에서 시공까지를 책임진 모태인 탓에 공주분식이라는 이름을 건 식당은 정확한 숫자는 정확하게는 파악이 안되지만 80여군데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얼칼’이라 불리는 ‘얼큰한 칼국수’의 신화는 작은 분식집에서 시작된 것이다. 음식은 그 시대와 문화와 식재료를 반영하지만 때로는 한 명의 요리사의 레시피에서 출발한다. 대전에는 얼칼 말고도 유명한 칼국수집들이 많다. 역사도 얼칼보다 10년은 앞선 1950년대 후반까지 올라간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칼국수집으로 알려진 ‘대선칼국수’는 1958년에 문을 열었고 대전역 앞에 있는 ‘신도칼국수’는 1961년에 개업했다. 대선칼국수와 신도칼국수는 멸치육수를 기본으로 한 남해안 칼국수에 가깝다. 대전역은 경부선과 호남선 전라선이 모두 통과하는 허브 역이다. 호남선으로 가는 열차의 객차를 교체하는 동안에 기다리는 승객들을 위해 대전역 플랫폼 안에서 팔던 대전역 가락국수는 기차 여행의 낭만의 상징처럼 되었다.
전국 족보의 대부분을 만들어내는 대전역 앞 인쇄골목 안은 급하게 형성되고 오래된 시가지의 전형을 보여준다. 좁은 도로와 낮은 집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붙어있는 거리에는 여관과 모텔 설렁탕 집, 대전의 명물 먹거리 두부 두루치기 집들에 칼국수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 골목 안에 비교적 넓은 사거리 모퉁이에 신도칼국수가 있다. 1961년에 정동골목에서 창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으로 옮겨온 탓에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독특한 외관의 식당으로 들어서면 벽에는 창업초기부터 사용된 칼국수 그릇과 가격들이 칼국수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개업 당시 20원, 지금은 4000원 20배로 칼국수 가격이 올랐지만 대전의 칼국수 가격은 여전히 전국에서 제일 싸다. 사골국물과 멸치국물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신도칼국수의 육수는 진하다. 공주분식 이전에 창업한 칼국수집답게 국물은 붉은색도 없고 매운맛도 나지 않는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칼국수집으로 알려진 대선칼국수는 둔산동의 ‘대선칼국수’와 대흥동의 ‘대선손칼국수’가 두 군데가 있다. 같은 집안에서 운영하는 칼국수 집이다. 손칼국수 한 그릇과 양파와 열무청김치 배추김치 그리고 이 집의 인기 소스인 초장이 함께 나온다. 맑은 국물 속에 투명하고 맑고 비대칭의 손반죽한 칼국수 면발 위로 다진 고기와 김 부추가 고명으로 얹어져 있다.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 투명한 느낌이 나는 고급스런 손반죽의 탱탱한 면발이 다진 고기와 어울려 세련된 맛을 낸다.
대전에는 실향민들이 많이 정착한 탓에 실향민들의 음식도 많다. 평양에서 ‘모란봉냉면’을 운영하다가 월남한 후 실향민이 대전에서도 외곽인 신성동에서 운영하는 숯골원냉면의 육수에서는 시큼한 식초맛이 난다. 신성동은 옛날에는 숯골이라 불렀다. 숯골원냉면의 자식들이 운영하는 대전의 숯골원계열 냉면들도 물론 다 같이 식초가 들어간 시큼한 고기육수를 내놓는다.
숯골원냉면은 메밀만을 사용해 툭툭 끓어지는 면발에 사골이 섞인듯한 조금 탁한 육수를 내놓지만 맛의 개성은 역시 식초가 내는 시큼한 동치미 같은 맛에 있다. 중부 내륙의 냉면의 가장 큰 특징인 식초의 시큼한 맛은 기후와 재료 그리고 추억이 얽힌 맛이다. 쨍한 동치미의 달고 시큼한 맛과 식초가 들어간 고기국물은 상당히 유사하다. 동치미를 담기에는 냉장시설이 부족했던 1950년대에 남한 평양냉면집들의 국물은 맑은 국물을 내는 양지머리를 많이 사용했다. 양지머리 고기국물은 ‘맹물’이라고 불릴 만큼 맑은 국물이 나온다. 물론 고기기름이나 찌꺼기를 잘 걸러내고 하루 정도 식혀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어쨌든 평양의 냉면집들에서도 제법 많이 사용했던 양지머리 고기국물은 부패가 가장 큰 문제였다. 식초는 부패를 막아주는 최고의 조미료이자 식욕을 이끌어내는 산도의 정점에선 조미료다. 서양의 전채(前菜)들과 중국의 차가운 전채, 일본의 음식들이 모두 신맛을 처음 요리로 내놓은 것은 신맛이 식욕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고깃국물에 들어간 식초는 부패를 방지하고 식욕을 끌어내면서 고향에서 먹던 ‘쨍’한 동치미국물을 연상시킨다. 대전역 주변에는 실향민들이 운영하거나 관련된 식당들이 많다. 중앙시장 먹자골목에는 소머리 국밥과 순대를 파는 난전도 유명하다. 소 가죽에 붙은 수구리도 판다. 실향민이 창업한 평양식 만두전문점 ‘개천식당’도 있다.
대전하면 떠오르는 음식으로 두부 두루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원래 두루치기는 대전 음식은 아니다. 1962년 2월호 <여원>에는 두루치기가 안동의 지역 음식으로 나온다. 안동에서는 두루치기를 술안주로 즐겨 먹었다. 안동의 두루치기는 쇠고기, 처녑, 간과 콩나물 등의 야채와 고추 후추 같은 매운 양념을 섞어 불 위에 얹어 국물을 조금 붓고 걸쭉하게 끓여 먹는 음식이었다. 다른 자료를 봐도 두루치기는 경상도에서 묵은 김치를 먹는 하나의 요리법으로 나온다. 2월 말이 되면서 김치는 묵은 맛이 나거나 시어진다. 묵은 김치를 요리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많았다. 두루치기도 그 중의 하나로 보인다.
두부 두루치기로 유명한 대전의 두루치기 원조집인 ‘진로집’은 1969년에 문을 열었다. 음식을 데치고 볶는 것을 보고 손님이 ‘두루치기’라는 이름을 붙인 뒤 이 말이 일반화됐다. 두부 두루치기는 대전에서 처음 시작했다. 두루치기란 말은 ‘한 가지 물건을 이리저리 둘러쓰는 일’을 가리킨다. ‘조개나 낙지 같은 것을 데쳐서 양념을 한 음식도 두루치기라고 한다’(우리말의 모든 것) 전라도 두루치기는 ‘쇠고기, 내장 등을 재료로 하여 화려한 고명을 얹고 만’든다. (한국의 맛 대전 두루치기) 재료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단백질을 주재료로 하고 볶아서 매콤한 양념과 야채를 얹어 볶아 먹는 다는 것이다. 비빔밥처럼 재료를 양념과 섞어먹는 한국인의 음식문화의 특질이 그대로 녹아있다.


맛칼럼니스트 박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