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1> 대화하듯 노래하라

크리스타는 눈을 감았다. 곧 로켓이 불을 뿜을 것이고 그녀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낼 것이다. 민간인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된 고등학교 여교사, 중력 같았던 부담으로부터도 잠시 자유로워질 것으로 생각했다. 10초의 카운트다운, 진동과 함께 떠오르는 느낌이 왔다. ‘이 순간을 영원히.’ 크리스타는 눈을 떴다.
정확히 74초 후인 오전 11시 39분 17초, 서로 다른 신문사 편집국에서 TV 생중계를 지켜보던 두 편집자가 거의 동시에 커피를 쏟았다. 설마 하던 상황도 잠시, 여기저기서 탄식과 비명이 터졌다. 누군가 TV의 볼륨을 최고 음량으로 키우자, 멈춰섰던 두 사람의 뇌도 최고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 쏟아진 커피가 테이블 다리를 타고 내려와 대리석 바닥에 고일 때쯤 양쪽 신문사 모두 비상 편집회의를 소집했다.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어떤 제목을 내세울 것인가. 격론, 지시, 반박, 재반박, 재지시, 그리고 정리. 밤늦게까지 편집국은 뜨거웠고, 바닥에 말라붙은 커피가 아침 청소 아줌마에 의해 닦여질 즈음 전혀 다른 프런트를 가진 두 신문이 가판대에 올랐다.



구어체 제목의 힘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건의 충격파는 엄청났다. 사건 후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태평양 건너 어느 편집자의 마음을 흔드니 말이다.
당시 뉴욕타임스의 1면 편집자는 정공법을 택했다. 제목은 <우주왕복선 폭발: 발사 74초 후 6명의 승무원과 고교교사 사망>. 폭발 순간의 사진과 분석기사를 실었고, 여교사 크리스타 매컬리프를 포함한 사망자 7명의 사진을 배치했다.
USA투데이의 편집자는 생각이 달랐다. ‘폭발은 오전이었다. 미국인 대부분이 생중계로 목격했다. 모든 채널이 종일 브레이킹 뉴스를 내보냈다. 다음 날 아침 신문의 1면은 뭘 보여줄 수 있는가.’ 비상 편집회의에서 그에게 발언권이 왔다. “이 충격을 생생하게 지면에 담아야 한다.”는 말에 편집국장은 반응이 없었다. “전국지로서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우리 신문이 방송뉴스의 복사판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해도 헛기침만 돌아왔다. “적어도 뉴욕타임스처럼 보여선 승산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서야 편집국장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면을 덮은 그래픽, 폭발 장면을 바라보는 크리스타 부모의 사진, 그리고 헤드라인 <오 마이 갓, 노>. 그날의 1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아마도.


말이 달리는 시대
신문의 구어체 헤드라인이 인상적이었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앞집 새댁도 옆집 아저씨도 하루 수백 수천 자씩 구어체 활자를 생산하고 유통한다. 출근길 경로 우대석 할머니의 현란한 손놀림에 놀란 적이 있다. 쳐다보는 나를 의식했는지 할머니가 말했다. “손자랑 톡하고 있어.”
카톡의 시대. 글이 차지하고 있던 활자의 왕좌는 말에게 넘어간 듯하다. 더불어 글을 글답게 하던 롱(long)의 날은 가고 글을 말답게 만드는 숏(short)의 날이 왔다. 사람들은 ‘숏글’에 끌린다. 단순하고 쉽고 친근하기 때문이다. 숏글에 끌리는 사람들을 끌기 위해 인터넷 매체들은 실시간 한 줄 제목에 생사를 걸고, 말로 승부하는 방송에서조차 제목을 앞세운다. TV를 켜보자. 앵커가 뉴스를 보도하는 중에도 화면에는 내용을 요약한 자막이 뜬다. 연예인들끼리 대사도 없이 웃고 있는데 ‘낄낄’이란 자막이 박힌다. 뭘 굳이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데, 방송국 간부들의 답은 간단하다. “시청자들이 좋아하잖아.”

 말 같지 않은 제목. 명사, 명사, 명사
제목 달기는 노래 부르기와 닮았다. 기사와 가사(한 끗 차이) 콘텐츠를 전달한다는 점, 전달자의 가치 판단과 해석이 담긴다는 점, 감성과 직관의 영역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할 수 있을까? 오디션 프로그램 ‘K팝 스타’에서 심사를 맡은 가수 박진영의 말이 흥미롭다.
“야, 넌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 억지로 고음을 만들잖아. 플로우(flow, 흐름)와 딜리버리(delivery, 전달력)가 중요해. 대화하듯이 ‘사랑해’ 불러야 하는데 사랑- 윽박지르는 것처럼 들려.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불합격입니다.”
내용은 전달해야겠는데 공간은 한정돼 있고, 단어 하나라도 더 넣으려 힘을 썼을 때 결과는 참혹하다.

<‘北 도발 억지’ 美 전략 자산 전개 협의>
<‘정유라 특혜대출’ 하나은행, 회장 특검 소환 우려 초긴장>
<대법 “철도파업, 사측 예측 가능… 업무방해 무죄”>
언어가 익사한 듯 숨 막힌다. 물론 명사로 이루어진 제목이 모두 지면을 망치는 건 아니다. 잠깐, 뭐지? 하다가, 이 말이었군, 곧 이해한다. 하지만 신문은 수십 페이지다. 지면을 넘기는 내내 턱, 턱, 흐름이 막힌다고 생각해보자. 명사 나열식 제목은 신문으로선 재앙이다. 명사가 셋 이상 뭉쳐있다면 도끼눈을 뜨고 봐야 한다. 제목을 다는 사람에게 지옥으로 가는 길은 명사로 뒤덮여 있다.

<하루 칼 3개 뽑은 특검, 대통령 아픈 곳 겨눴다>
<“4주간 구금” 선고에 멀뚱… 통역해주자 와락 눈물>
<가격표 본 엄마, 손에 든 양배추를 내려놨다>
명사를 걷어내면 동사와 부사와 어미들이 헤엄칠 공간이 생긴다. 내용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그 공간에 표현의 욕구가 차오른다. 뭘 버리고 뭘 선택하느냐는 편집자의 능력이다. 선택을 했다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집중하자. 그것이 신문 편집에서, 혹은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입이 닳도록 얘기하는 ‘선택과 집중’의 참의미다.


당신의 제목, 소리 내어 읽어보라
매일 아침 방송 뉴스에 나와 그날 신문의 제목들을 빨간펜으로 쭉쭉 밑줄 쳐가며 훑어주는 분들이 있다. 취사선택이 그분들의 일과다 보니 제목에 대한 안목에 나름 도가 트이셨다. 한 도인에게 여쭸다. “어떤 제목이 좋은 제목인지요?” 도인이 말했다. “소리내어 읽었을 때 쉽게 와닫는 제목이 좋은 제목이니라.”
오호라. 자신이 단 제목에 확신이 없다면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라. 자연스러운가. 다시 읽어보라. 의미는 바로 전달되는가. 귀로 느껴보라. 억지스러운 부분은 없는가.
편집국 테이블에 쌓인 여러 신문들 중 하나를 집어들고 제목 산책을 해본다. 플로우와 딜리버리를 생각하며 읽어본다. 1면, 2면, 3, 4… 답답하다.
‘이 신문 뭐니?  오 마이 갓,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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