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5.사진을 만져봐>


#6월 1일 04:30pm. 편집국 사진편집 회의
“오늘 들어온 1면 사진거리는 어떤 게 있지?”
“4대강 보 수문 개방한 사진이 있고, 그 외엔 특별한 게 없습니다.”
“보 수문 연다는 건 이미 예고된 거잖아? 특별히 눈에 띄는 사진이라도 있어?”
“물을 조금씩 흘려보내는 거라, 인상적인 장면은 아닙니다.”
“외신에 뭐 들어온 건 없나?”
“네, 쓸 만한 게 아직은.”
“우선 가판은 4대강 사진으로 막고 밤에 뭐 들어오면 그때 바꾸자고.”
(가판: 신문의 첫판. 50판으로도 불린다. 전날 오후 6시 반쯤 PDF 유료 서비스로 볼 수 있다. 인쇄는 하지 않는다. 주로 기업이나 정부 기관들이 다음날 신문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본다.)

#08:00pm. 편집부장 데스크
“부장, 오늘 동해에서 항모 칼빈슨과 레이건이 동시에 훈련을 했다는데요. 외신에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그래? 1면에 쓸 만해?”
“방금 연합뉴스 통해 몇 장 올린 거 찾았는데, 항모 두 대가 모두 뚜렷하게 보이는 장면은 없습니다.”
“뭐야, 걔네들. 사진으로 공개했다면 좀 더 와이드하게 찍었어야지.”
“그러게요. 이걸로는 1면에 내세우긴 힘들겠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는 훈련인지 정치부에 한번 알아봐.”
“네.”

#08:10pm. 정치부 외교안보 담당자 데스크
“이 사진들 한 번 봐줘.”
“네, 선배. 칼빈슨과 레이건이 같이 훈련을 했네요. 일본 언론에서 미국 항공모함과 연합훈련 한다는 예고 기사를 내긴 했는데……. 가운데 있는 함정은 일본 자위대인 걸로 보입니다.”
“이런 장면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항공모함 두 대가 동시에 훈련을 한 적이 있었어? 그것도 동해에서?”
“동해에선 확실히 처음이고요. 다른 데서도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전문가한테 확인해 보겠습니다.”

#08:50pm. 편집부장 데스크
“부장, 방금 한 장이 더 올라왔습니다. 조금 멀리서 찍은 거지만 칼빈슨과 레이건이 동시에 보입니다.”
“정면에서 찍은 사진이군. 양쪽 끝에 확실히 항공모함 형태가 보이긴 하네. 그런데 가운데 배는 뭐지?”
“일본 자위대의 호위함 같습니다. 일본도 함께 훈련했거든요.”
“바로 옆에서 이런 대규모 군사훈련이 벌어지는데도 우린 참……”
“항모 두 대가 동해에 뜬 건 처음이랍니다. 1면에 와이드로 펼치죠.”
“일단 51판 사진은 이걸로 교체하고, 더 좋은 사진을 찾아보자고. 사진부한테도 연락해서 미군 쪽이나 다른 루트로 들어온 사진은 없는지 찾아보라고 하고.”
(51판: 밤 9시20분에 마감하는 첫 인쇄신문. 배달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강원지역 등 지방 쪽에 배정된다)

#09:30pm. 1면 편집자의 데스크
“사진부 야근자 좀 바꿔주세요. 응, 51판 1면 사진 봤지? 좋긴 한데 양쪽 항공모함이 너무 작게 보여서 말야. 혹시 다른 사진 들어온 것 없는지 봐줄래? 얘네들이 훈련을 했으면 홍보용으로 사진을 올려놨을 거야. 나도 찾아볼 테니까, 미국 해군이나 일본 자위대 홈페이지 같은 데 한번 뒤져봐. 응, 그래. 찾으면 바로 알려주고.”

#10:30pm. 편집부장 데스크
“52판엔 사진을 톱으로 올리는 건 어떨까? 오늘 특별히 중요한 뉴스가 있는 것도 아닌데.”
“충분히 의미 있는 사진이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52판: 밤 11시20분에 마감하는 신문. 야간에 발생한 큰 뉴스가 없는 한 대부분의 지역에 이 판이 배달된다)

#11:35pm. 1면 편집자의 데스크
“선배, 이 사진 좀 보세요. 찾았어요.”
“그래, 바로 이거야! 외신에는 없던데 어디서 찾았어?”
“일본 해상자위대 홈페이지서 찾았어요. 얘네들이 사진 파일로 올려놓은 것 말고 따로 문서파일 안에 첨부한 게 있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클릭해 봤는데, 대박.”
“음, 숨겨진 파일이라…… 그래서 외신 기자들도 못 본 거구만. 잘했어.”

#11:40am. 편집부장 데스크
“부장, 찾았습니다.”
“그래? 이야, 사진 좋네. 어디서 났어?”
“사진부 야근자가 자위대 홈페이지 뒤져서 찾았답니다.”
“53판에 이걸로 바꾸자. 사진을 더 키울 수 있는지 연구해보고. 국장한텐 내가 알릴 게.”
“단독사진이니까 최대한 공간을 확보해 보죠. 기사에서 덜 중요한 부분은 잘라내고, 지면 배치를 좀 바꾸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 52판 강판한지 얼마나 됐지? 조금이라도 더 찍어야 하니까 서두르자.”
(53판: 52판을 찍은 다음의 야근 판. 정해진 마감 시간이 없다. 윤전기는 계속 돌고 있기에 빠르면 빠를수록 더 많은 부수를 찍을 수 있다. 52판 인쇄를 멈추고 53판으로 바꿔 인쇄하는 형식.)

#참을 수 없는 사진의 무거움
‘오늘 사진 뭐 쓰지?’ 편집자의 모니터엔 하루에도 1000장이 넘는 사진이 올라온다. ‘이걸 써야 하나?’ 예고된 이슈가 있는 날엔 그나마 낫다. 그마저도 없는 날엔 난감하다. ‘이거라도 쓸까?’ 사진을 골랐는데 이미 석간 1면에 떡하니 실려 있다면 당황한다. ‘쓸 게 없네.’ 아까 봤던 사진들을 한 번 더 고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쯤 ‘북한은 뭐 안하나’ 싶은 생각이 잠깐 스치고, ‘아, 미치겠네.’ 마감시간에 쫓기다 보면, 취재거리가 없어 스스로 사건을 저지르고 특종을 한다는 할리우드 B급 영화의 스토리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매일 사진 때문에 고민하는 편집자에게 단독사진은 축복과 같다. 항모 훈련사진의 경우처럼 인터넷을 뒤져 외신에 없는 사진을 찾아냈을 때도 그렇지만, 사진기자가 특종사진을 들고 왔을 때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사진을 받아든 순간부터 편집자의 심박은 빨라지고,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사진을 최대한 부각시킬 수 있는 지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우병우 특종사진을 받아든 날
작년 말 세간의 화제가 됐던 ‘우병우 팔짱 사진’의 경우도 그랬다. 한밤에 사진부가 들고 달려온 이 사진을 위해 편집자는 세 가지 조치를 취했다.
첫째, 클로즈업과 트리밍의 최적점을 찾았다. 원본 사진은 건물 속 세 사람을 겨우 구분할 만큼 사물이 작게 나와 있었고, 거칠었다. 최대한 확대하되 사무실 속 셋의 분위기는 살려야 했다.
둘째, 이전 판의 5단 톱기사를 2단으로 줄이고 오른쪽 4단을 사진으로 채웠다. 정색을 하고 사진을 톱기사 자리에 놓기엔 당시로서는 무리가 있었다. 독자 입장에선 왼쪽 톱 자리든 오른쪽이든 상관이 없기도 했다.
셋째, 사진 아래 우병우 검찰수사 기사의 제목(팔짱낀 채 웃으며 조사받는 우병우)을 사진에서 뽑았다. 기사에는 사진과 관련한 내용이 한마디도 없었지만, 그날의 기사는 영광스럽게 제목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임팩트를 더 줬어야 했던 것 아닌가, 지금에 와선 아쉬움도 남지만 당시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사가 그렇듯 사진의 편집에도 적정선이 있다. 그 선을 너무 넘어서면 편집자의 의도가 부각되고, 그래서 과장한 듯 보이고, 오히려 사진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그날은 그 경계를 넘지 않았다고 본다.

지면의 결과가 좋으면 아무리 식은땀을 흘렸다 해도 편집자는 즐겁다. 특종사진이 실린 지면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웃고 있을 세상의 모든 편집자에게, 조용하지만 격렬하게, 마음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설명>
-6월2일자 조선일보 1면 사진의 변화. 4대강 사진(50판)에서 항모 훈련사진(51판)으로 바뀌고, 사진 위치가 위쪽으로 올라갔다가(52판) 한밤에 사진이 바뀌면서(53판) 커졌다.
-조선일보 우병우 특종 사진의 원본.
-작년 11월7일자 조선일보 1면의 우병우 사진 편집. ‘쏘아본 우병우’ 사진(51판)에서 ‘팔짱 우병우’ 사진(52판)으로 바뀌었다. 원본 사진을 최대한 클로즈업하고, 수사 기사의 제목을 사진제목으로 대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