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6.인터뷰 제목>


 



(인터뷰)어: 갑작스런 요청이었는데도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인터뷰)이: 맨날 책상에만 붙어있는 게 지겨웠는데 오히려 내가 고맙다. 뭐든 물어보라. 성심성의껏 답하겠다.
: 인터뷰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묻는다면,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 어떤 식으로 달리는지 궁금하다. 인터뷰이가 한 말 그대로를 제목으로 사용하나?
: 제목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답한다면,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 그렇다면 묻겠다. 지난 6월 2일자 신문에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의 방한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다. 대부분의 신문들이 <“한국이 원치 않으면 9억달러 사드 예산 다른 데 쓸 수 있다”>는 그의 말 그대로를 제목으로 올렸다. 그런데 당신네 신문은 <‘한국이 원치 않으면 사드 뺄 수 있다’ 시사>라고, 그가 하지도 않은 말을 제목으로 달았다. 이건 뭔가?
: 질문이 좀 공격적이다.
: 뭐든 물어보라고 하지 않았나.
: 좋다. 당시엔 그 말이 나온 상황적 맥락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더빈 원내총무는 인터뷰에서 ‘사드 예산 다른 데 쓸 수 있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했다. 그게 무슨 의미겠나. 그 말이 뜻하는 바를 기자들은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일반 독자들은 바로 알기 힘들다. 그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 새 정부의 사드 정책에 항의하러 온 것이고, 국방 예산을 좌우하는 자리에 있는 그의 말은 일종의 경고였다. 단순히 미국 상원의원이 예산과 관련한 개인적 의견을 밝힌 게 아니라는 거다. 미국이 한국 대통령에게 ‘계속 이러면 사드 빼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 의미를 정확히 짚었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해설 기사가 아니라 인터뷰 기사였다. ‘사드 뺄 수 있다’고 직언을 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데, 그럼 조작 아닌가?
: 조작으로 느껴질 정도면 당사자가 가만있겠는가. 독자들도 바보가 아니다. 신문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다. 말한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편집자가 개입하는 거다. 
: 그래서 말따옴표를 사용하지 않고 ‘시사’라고 뒤에 붙였나? 나름 조심을 한 건가?
: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라고 해서 반드시 말따옴표를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말보다 그 말이 ‘시사’하는 바가 더 중요하다면 따옴표를 빼고 갈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말 자체를 아예 무시한 제목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 어떤 상황을 말하는가?
: 예를 들어 보자. 우리 쪽 기자가 원더우먼을 단독 인터뷰했다. 특집 지면을 비워뒀는데 마감 시간이 다 돼서야 들어온 인터뷰 기사가 형편없다.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둥 슈퍼 영웅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둥 뻔한 말 뿐이다. 절망하던 편집자는 기사에 첨부된 현장 사진에 주목한다. 매력적이다. 편집자가 남자여서 어쩔 수 없다. 한참을 쳐다보다가 문득 그녀의 손에 눈길이 간다. 어, 이건 뭐지? 사진을 200% 확대한다. 아름다운 손가락에 반지가 있다. 100% 더 확대한다. 아니, 이 문양은. 편집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다음 날 이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뭐겠나?
: 서민을 위한다면서 명품 반지 낀 원더우먼?
: <원더우먼, 슈퍼맨 반지를 끼고 나왔다>.
: 눈길은 끌겠다.
: 추가 취재가 필요하다. 슈퍼맨도 원더우먼 반지를 끼고 있다는 게 확인되면 대박이지 않겠나? 편집자의 제목에서 시작된 뉴스가 세계적인 특종으로 이어지는 거다. 퓰리처상 감이다. 정작 편집자는 퓰리처상은커녕 편집상도 못 받겠지만.
: 웬 퓰리처상? 요즘은 연예뉴스에도 퓰리처상을 주나?
: 웬 연예뉴스? 슈퍼 히어로 둘이 사귄다는 거다. 지구의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톱뉴스다.
: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영화 원더우먼의 배우 갤 가돗을 인터뷰했다는 설정 아니었나? 그리고, 모르나본데 그녀는 유부녀다.
: 당신은 상상력이 부족하다. 편집자는 못하겠다.
: 당신의 예는 비현실적이다. 취재기자로는 위험하다.
: 인터뷰 기사라도 상황에 따라선 전혀 다른 제목이 나올 수 있다는 거다.
: 됐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뻔한 내용의 말은 제목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내용이 없어도 말 자체가 중요할 수 있지 않나? 정치인들의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 맞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말을 빙빙 돌려서 하는 통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정치인들이 많다. 이런 동문서답형 정치인들의 말은 제목으로 올리기조차 힘들다. 일단 말이 너무 길기 때문이고, 중간 중간 생략해 줄여놓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제목이 되고, 그래서 단어를 조금 수정해 말이 되게 만들면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항의를 한다. 난감하다.
: 정치인들의 모호한 말을 독자들에게 ‘통역’해줄 필요가 있다는 건가?
: 개떡같이 말해도 제목은 찰떡같이 달아야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개떡은 찰떡이 될 수 없다. 고민하는 편집자만 떡이 된다. 그래서 이재명이나 홍준표 같은 사람들이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 방금 홍준표라고 했나?
: 그 사람 말은 그대로 써도 제목이 된다. 편집자의 수고를 덜어준다. 물론 실을 가치가 있는지가 문제지만.
: 지난 6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CBS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당선 후 첫 언론 인터뷰이기도 해서 당시 화제가 되었는데, 당신네 신문은 <문대통령 “김정은이 핵으로 뻥치고 있다”>는 헤드라인을 올렸다. 그런데 다른 신문에선 ‘뻥쳤다’는 말을 했다는 기사나 제목이 없다. 찰떡같은 제목을 위해 편집자가 뻥친 건가?
: 질문에 감정이 담긴 듯하다.
: 미안, 표현이 과했다. 바꿔 묻겠다. 편집자가 약간의 단어 수정을 한 건가?
: 내가 알기론 ‘뻥’이라고 제목을 단 신문이 한군데 더 있었다. 당신이 봤다는 다른 신문에선 문 대통령이 ‘뻥’ 대신 어떤 단어를 썼다고 표현했나?
: 한 신문은 <허세를 떨고 있지만>이라고 했고 또 한 신문은 <허세를 이어갈 테지만>이라고 썼다. <블러핑을 하고 있다>라고 영어 표현을 쓴 곳도 있었다.
: 문 대통령은 분명히 CBS 앵커에게 관련 발언을 했고, 신문은 인터뷰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써야 한다는 당신 주장을,
: 내가 그렇게 주장한다는 건 아니다.
: 그런 ‘누군가의’ 주장대로라면, 정답은 하나고 나머지는 다 틀렸다는 건데. 어느 신문이 정답을 썼을 것 같나?
: 문 대통령이 해외 언론과의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그런 홍준표스러운 표현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제목에 ‘뻥’을 칠 간 큰 편집자는 없다. 당시 방송의 풀버전과 청와대에서 공개한 인터뷰 전문을 보면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겉으로는 핵과 미사일로 뻥을 치지만”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 그럼 당신 신문이 맞고 나머지가 틀렸다?
: 내가 지금껏 얘기한 걸 뭐로 들은 건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편집자가 개입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대통령이 ‘뻥’이라는 예상 밖의 표현을 쓴 데 대해 그 자체가 뉴스가 된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쓰는 것이고, 아니라면 ‘허세’나 ‘블러핑’으로 순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안에 대해서라면 모든 신문이 다 맞다.
: 무슨 말인지 알겠다. 당신 말대로라면 지금 이 인터뷰도 우리 쪽의 판단이 개입할 수 있다는 건데, 편집자가 어떤 제목을 달지 궁금하지 않나. 불편한 제목이 달릴 수도 있는데.
: 인터뷰에 응했을 때는 요청하는 쪽의 성향이나 의도를 어느 정도는 알고 하는 거다. 원더우먼이 왜 기자 앞에 슈퍼맨 반지를 끼고 나왔겠나?
: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혼자 묻고 답하는 이런 짓을 왜 하나?
: 글쎄. 쓰다 보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어도가 어디쯤 있나 궁금해지기도 한다. 매너리즘에 묻혀가는 스스로에게 나름 저항하는 방식이라고 해 두자. 모든 익숙함은 기자의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