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7> 야근의 재구성



 

“오늘밤은 바쁘셨겠네요.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택시 뒷좌석에 앉아 막 안전벨트를 매려는데 기사가 묻는다. 새벽 두시 반에 신문사 정문에서 콜을 한 사람이 탔는데 취하지 않았다면, 택시기사는 손님의 직업을 알아챈다.
“아, 네.”
다른 날 같았으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어깨에 힘 좀 줬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별 반응이 없자 기사가 힐끗 백미러로 쳐다본다. 초췌한 표정과 처진 어깨, 손님의 기분까지  알아챈 택시기사는 말없이 속도를 높인다.
퇴근 길 차창 밖의 불빛들을 바라보노라면 난데없는 것들이 생각나곤 한다. 긴박했던 야근 때문일까. 오래전 ‘주말의 명화’(이 단어가 반갑다면 당신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에서 본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신문사 편집국의 야근 상황을 다룬 ‘페이퍼(The Paper)’라는 외화였는데, 열정적인 기자(마이클 키튼)가 한밤에 알게 된 단독 정보로 아침 신문의 1면 톱기사를 바꾼다는 내용이었다. ‘흑인 청년들이 범인이다’는 헤드라인의 신문이 인쇄되고 있는 윤전실에서 ‘그들은 범인이 아니다’며 선배 여기자(글렌 클로즈)와 인쇄 스톱 버튼 쟁탈전을 벌이는 장면은 윤전기의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압권이었다. 난투극(?)을 벌이던 마이클이 있는 힘을 다해 빨간색 버튼을 누르던 순간이 얼마나 통쾌했던지.
마이클처럼은 아니었지만, 오늘밤 나도 빨간 버튼을 눌렀다.


#2시간 30분 전
“무스 유스이데 그에오?(무슨 뉴스인데 그래요?)”
국제부 선배가 허겁지겁 달려왔을 때 나는 입 안 가득 야식 김밥을 물고 있었다.
“방금 NHK에 1보가 떴는데 말야, 북한이 뭘 쐈다는데?”
“이 밤에?”
12시 15분이었다. 확인해보니 NHK에 뜬 뉴스는 딱 한 줄 <북한, 미사일 추정 비행체 발사 정보>, 그뿐이었다. 추정? 정보? 확실한 건 없었다. 이런 일이 터졌을 때 편집부 야근자의 첫 번째 임무는 보고다. 그리고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스피드.
“야간국장 빨리 내려오라고 해요.(그날 야간국장 당번은 경제부장이었고, 경제부는 편집부보다 한 층 위에 있다)”
편집부장에게 전화를 걸며 정치부 쪽을 쳐다봤지만 모두 퇴근한 후였다. 밤 뉴스를 추가하는 53판 신문도 이미 인쇄를 시작한 터라 국제부와 편집부 야근자를 제외하고는 편집국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퇴근한 지 30분도 안 돼 긴급전화를 받은 편집부장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는 말과 함께 다시 출근할 준비를 했다.(회사와 가까운 동네에 편집부장의 집이 있다. 부동산에 관한 실패담을 많이 들었지만 이보다 나쁠 순 없다)
“북한이 밤에 미사일을 쏜 적이 있었나?”
“제가 알기론 처음인 것 같습니다.”
“탄도미사일인가?”
“아직 모릅니다.”
“어디로 쐈지?”
“그것도 모릅니다. 아직은”
“국방부 담당 기자에겐 연락했나?”
“네. 취재 중이랍니다.”
부장과 통화를 한 후 똑같은 내용의 대화를 야간국장과 다시 한 번 하고 있을 때 연합뉴스 속보가 한 줄 떴다. 12시 22분, NHK의 첫 보도 후 7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합참 “북한, 28일 오후 11시 41분께 미사일 발사”>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여전히 어떤 미사일을 어디서 어디로 쐈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아, 미치겠네. 기계를 세워야 하나
신문사에서 윤전기를 세운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인쇄를 멈춘 만큼 신문이 늦게 나오고, 윤전 기사들과 수송 트럭과 지국 직원들과 배달원들 모두가 대기상태가 된다. 그냥 대기하는 게 아니다. 초조하게 기다린다. 시간이 너무 초과되면 출근시간 전에 배달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칠 테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초조함과 걱정 사이에서 운명의 신이 장난을 칠지도 모른다. 수송 트럭이 과속하다 사고가 난다면, 연로한 배달원들이 바삐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딘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과거 윤전실에서 일하던 어떤 분은 서둘러 신문 판갈이를 하다 윤전 기계에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은 부분 자동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윤전기를 세우는 행위에는 여전히 위험과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니 단거리 미사일 하나 쐈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ICBM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북한이 이 밤에 작은 걸 쐈을까? 확인이 안 되는데 무슨 결정을 할 수 있나. 아, 미치겠다.


#윤전기를 세워라
연합뉴스의 보도가 나오고 정확히 3분 후, 그러니까 12시 25분에 세 가지 속보가 거의 동시에 인터넷에 올라왔다.
①<합참 “북한, 자강도서 동해상으로 미사일 1발 발사”>
②<NHK “일본 배타적경제수역 내 낙하 가능성”>
③<문대통령 오전 1시 NSC 긴급회의 소집>
“자강도? 저번 ICBM은 어디서 쐈죠?”
“그땐 평안북도에서 쐈지, 아마.”
북한이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선물로 쏜 ICBM급 미사일은 평안북도 구성에서 쐈다. ①자강도를 검색하니 평안북도 바로 옆이었다. 거기서 ②일본 EEZ까지 갔다면? 이것 또한 저번에 쏜 것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③대통령이 새벽에 NSC를 소집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편집국장에게 전화하세요. 기계를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야간국장이 편집국장과 통화를 했고 편집국장은 편집자의 의견을 물어왔다. 나 참,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시간도 아깝다, 빨리 윤전기를 세우고 1면 톱을 바꾸고 한 부라도 더 찍어야지, 그러니 잔말 말고 오케이 사인이나 내달라, 는 의견을 최대한 공손한 표현으로 전달했다.
“오케이!” 편집국장과의 통화가 끊어지기도 전에 내 손은 윤전관리실의 내선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기계 세워주세요. 급합니다.”
끼기기기긱~ 하며 윤전기가 멈춰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12시 30분을 가리키는 편집국 시계 아래로 편집부장이 출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부터 중요한 건, 역시 스피드.
기사를 주문하고, 1면 레이아웃을 바꾸고, 디자인팀 야근자에게 지도 그래픽을 부탁하는데 또 하나의 속보가 떴다.
<미국 국방부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확인”>(12시 45분)
그럼 그렇지. 이젠 ICBM급인지 아닌지만 남았는데 기계를 세운 이상 속보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제목은 기사가 나오기 전에 완성됐다. <北, 한밤에 동해로 탄도미사일 발사>.
국방 담당 기자가 기사를 출고했다. 지금껏 나온 속보 이상의 내용은 없었다. 기사를 흘리고 교열을 본 후 강판, 새벽 1시가 되기 전에 모든 상황이 끝났다. 이제부턴 그 어떤 팩트가 올라온다 해도 다시 개판을 하거나 기계를 세울 수는 없다. ‘이 모든 게 가짜뉴스였다’는 정정보도가 뜬다면? 그런 상상은 심장에 좋지 않으니 패스.
윤전기가 전속력으로 돌아가는 동안 <NHK “고도 3000킬로 넘었을 가능성... 45분 비행”>(01시 10분) 속보가 떴고, 인쇄가 7부 능선을 넘어갈 즈음 <합참 “진전된 ICBM급 추정”>(01시 40분) 뉴스가 나왔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2시쯤 편집부 데스크의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의 야근이 무사히 끝났음을 알리는 전화였다.
“윤전인데요. 종쇄(인쇄종료) 됐습니다. 모두 44만부 찍었습니다.”


#다시 택시 안
휴대폰에서 속보를 알리는 진동이 울린다. <미국 국방부 “ICBM급 확인”>(02시 40분)
아침 신문 제목에는 ICBM이란 단어를 넣지 못했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아침이면 더 진전된 뉴스가 인터넷과 방송에 널릴 텐데 종이신문의 속보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너의 야근이 무슨 보람이 있냐고. 맞다.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돈 내고 종이신문을 받아보는 사람의 느낌은 조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침 신문의 신선한 냄새와, 종이의 서걱대는 감촉과, 커다란 활자의 제목에서 만져지는 뉴스의 질감을, 그들은 느낄 것이다. LP를 꺼내 먼지를 털고 턴테이블에 올려 들어본 사람은 그것이 주는 색다른 감동을 안다. 뉴스 매체에서도 언젠가는 ‘아날로그의 반격’이 일어나지 않을까. 아침 신문의 뉴스를 매일 경험하는 독자들에게 오늘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근데 톱 제목에 ‘동해로’란 단어는 쓸데없이 왜 넣었을까. 택시를 내리면서 생각했다. ‘기습 발사’란 표현이 들어갔어야 했는데. 현관문을 열면서 되뇐다. 당연히 동해로 쐈겠지. 샤워하는 내내 후회한다. ‘기습’을 놓치다니.
아, 이것도 병인 양하여 오늘밤 잠은 다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