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8> ‘아재 제목’의 추억

 

 

 

 

 

“요즘 제목들이 너무 밋밋해. 안되겠어.”
옛날 옛적 신문사 편집국에 석양주(초판 신문을 마감하고 저녁 회의 전까지 마시는 술)가 유행하던 시절, 말술로 유명했던 어느 편집부장이 저녁 회의 시간에 붉은 얼굴로 호통을 쳤다. 그러고는 비장의 카드를 날렸는데, 다음 날부터 각 지면의 제목에 상금을 건다는 것이었다. 술김이었거나 홧김이었거나 사재를 털어 편집부의 발전을 장려하겠다는 이 숭고한 선언에 나는 귀가 솔깃했다. 상금이 무려 20만원(당시 삼성전자 주식이 40만원이었던가. 아프다. 주식 얘기는 하지 말자)이었기 때문. 코흘리개 신입이었던 나는 돈 몇 푼에 흔들릴 기자가 어디 있냐는 투로 웃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다음 날 내 지면에 던져진 기사는 ‘국방부에서 칼로리를 낮추고 품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병 식단을 개편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제목이든 일단 튀고 볼 일이었다. 그리고 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말을 비트는 것이라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다. 둘러말해 언어유희, 솔직히 말해 말장난이었다. 기사와 관련된 단어를 늘어놓고 이리 비틀어 보고 저리 연결해 보다가 만든 제목은 이랬다.


#軍살 빼고, 軍침 돌게
군대의 군과 군살의 군과 군침의 군. 동음이의어의 단순한 발견을 일차원적인 재치로 연결시킨 이 제목은 운 좋게도, 깊은 고민과 문학적 언어와 뉴스의 맥락이 담긴 선배들의 작품을 모두 제치고 그날의 상금을 먹었다. 그리고 행운은 그걸로 끝이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의 ‘말장난’은 채택되지 않았다. 고민하는 내게 “이제 그만하지” 웃으며 말하는 선배도 있었다. 부장이 그 말을 들었던 건지 얼마 안 되는 사재가 바닥난 건지 나흘째 되는 날 ‘제목 상금’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벤트가 끝나던 날 아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해서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술자리의 주제는 ‘참을 수 없는 제목의 가벼움’이었고, 참을 수 없었던 만큼 술잔은 밤새 가벼워졌다. 결국 다음 날 내게 남은 건 상금을 초과해버린 술집 영수증과 숙취와, 술 때문만은 아닌 후회였다.


#이건 못 참겠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아니란 걸 알면서도 참기 힘든 일들이 있다. 다이어트 중인 사람들에게 치맥이 그렇듯이 제목 언어를 다루는 편집자들에겐 ‘말장난’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미국이 엄청난 위력의 허리케인 때문에 난리가 났었는데 그 이름이 ‘어마’였다. 이런 허리케인은 태평양 건너 편집자들의 마음까지 흔든다. 이름을 듣는 순간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형용사가 떠오르고, 누구나 떠올리는 말이라면 결코 좋은 제목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젓고, 다시 기사를 보고 사진을 보는데 자꾸만 그 단어가 생각이 나고, 아니야, 절대 그런 제목은 달지 않아, 머리론 부정하면서 손으론 이미 그 제목을 타이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마어마한 허리케인 ‘어마’>.
관련 기사와 사진이 등장한 날, 신문 편집자들은 ‘어마어마한’ 유혹을 참았을까 못 참았을까.
<‘어마’무시한 또 다른 공포> (서울경제-어마무시란 표현도 있었군), <어마어마하게 커진 허리케인 ‘어마’>(경향신문-위성사진과 잘 어울리네), <‘하비’ 저리가라… 어마어마한 허리케인 ‘어마’>(조선일보), <어마어마한 허리케인 ‘어마’ 주말께 플로리다 상륙>(헤럴드 경제), <이름 때문인가… ‘어마’어마한 허리케인> (국민일보 인터넷판- 이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제목을 달았다고 변명하는 듯)
역시나 많은 편집자들이 ‘어마’의 위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허리케인 어마, 엄마야! 놀란 미국>이란 제목도 있었는데, ‘어마’에 ‘엄마’를 연결시킨 걸 어떻게 봐야할지 잠깐 난감했었다.


#아재 제목, 그리고 패러디
각종 편집상을 받은 과거 지면들을 살펴보다가 뜻밖에, 동음이의어의 조합으로 만든 ‘조어’가 많다는 사실에 당황한 적이 있다. 신선하다고 해야 할지 가볍다고 해야 할지, 너무 무거웠던 옛날 신문의 풍토에서는 이런 제목 자체를 파격으로 본 건지, 어찌 보면 재치 경연대회 같고 어찌 보면 술자리 농담 같은 언어들이 제목 달기를 배우기 시작한 편집자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억지 조어’를 김정은 보듯 싫어하는 어느 선배만큼은 아니었지만, 편집이 처한 상황적 한계를 이해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후로 세월이 흐르고, 매일 이리저리 제목에 치이다가 몸도 마음도 찌들어가는 지금에 와서는 생각이 좀 바뀌긴 했다. 출품하는 지면이 아닌 일상적 편집에서야 ‘아재 제목’도 괜찮지 않나는 식으로 타협하게 됐다고나 할까. 물론 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말이다.
대나무 숲을 소개하는 기사와 사진에 <竹이네>, 죽집을 소개하며 <죽이네>, 차밭에서 <세상 시름 茶 잊고 가네>, 이 정도의 제목은 ‘아재 제목’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정치 지면에서 <안철수 또 철수>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고, <盧는 “Go” 高는 “No”>라며 한자와 영어를 총동원한 제목, 여기서 언급된 고씨 성의 그분이 낙마했을 때 또 한번 <高, 스톱>이란 제목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름을 비튼 제목 중에 최고봉은 아마도 축구대표팀의 아드보카트 감독이 아닌가 하는데, <아주 복 가득한 감독>으로 어느 스포츠 신문이 올렸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이런 종류의 제목엔 ‘패러디’도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 일본을 빗댄 <軍國의 추억>이란 제목이 있었고, ‘곡성’이 인기를 끌었을 땐 여기저기서 <뭣이 중헌디>와 <미끼를 물었다>를 남발했으며, 최근 음원시장을 싹쓸이했던 ‘프로듀스 101’의 노래는 많은 신문들이 <“나야 나”>를 외치게 만들었다. 이실직고 하겠다. 사실 나도 1면에 그 제목을 쓴 적이 있는데, ‘나야 나’라는 흔한 표현은 절대 쓰고 싶지 않았으나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 ‘경쟁하는 회사가 101곳’이라는 문구를 발견한 순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8300억 나랏돈 풀리자, 벤처투자 101곳 “나야 나”> 한참을 고민하는 척 하다가 그리 달고야 말았다. 노래를 아는 독자라면 한번 웃고 넘겼을 것이고 몰랐더라도 무심히 넘어갔을 것이다.
내가 아는 패러디 제목 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오래전 영화 ‘식스 센스(브루스 윌리스 주연)’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을 당시 납량 특선 영화들을 소개하는 어느 문화면의 제목이다. 한국귀신 중국강시 서양유령 등 전 세계의 귀신을 총망라한 사진 위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래도 안 무서우면 당신이 귀신이다>(아직 ‘식스 센스’를 못보신 분께는 죄송. 치명적 스포일러를 말해버렸으니)


#뇌의 자기방어 본능과 기자적 가슴 사이
나를 비롯해 많은 편집자가 ‘아재 제목’과 패러디의 유혹에 흔들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쉽기 때문이다. 편집자들은 매일 제목달기의 고통을 감내하려 하나 고통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언어유희’를 작동시키거나 남이 만들어놓은 무엇에 올라타고자 한다. 때때로 본능에 순종하지만 기자적 가슴을 지닌 모든 편집자는 또한 알고 있다. ‘아재 제목’도 ‘아재 개그’처럼 순간의 웃음과 가벼운 감탄을 줄 수 있을지언정 사람들의 마음 안쪽에 의미 있는 인상을 남기기는 힘들다는 것을.
허리케인의 제목으로 이 글을 쓰게 됐으니 과거 재난 기사의 제목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고(故) 장기영 한국일보 창업주가 ‘지면을 통틀어 모든 기사의 내용이 이 사진제목 하나만 못하다’고 극찬했던 제목이 있었다. 기록적인 폭우로 한강이 범람하는 바람에 일가족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수해 기사였다. 만수위(滿水位)로 시커멓게 흘러가는 ‘어마어마한’ 한강의 물살을 잡은 사진이 실렸고, 그 아래 구석에 돋보이지 않는 크기로 담담하게, 사진제목이 적혀 있었다.
<울며 흐르는 滿水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