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신우성의 편집기자와 글쓰기 <5> 논증적 글쓰기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는 신입생들에게 의무적으로 ‘논증적 글쓰기 수업(Expos, Expository Writing Program)’을 듣게 한다. 사진은 하버드대 로스쿨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자료를 열람하는 장면.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는 체계 있는 글쓰기 교육으로 학생들을 ‘에세이 선수’로 만든다. 사회 지도층으로 성장하면서 꼭 필요한 게 전문지식과 논리력, 표현력인데 바로 글쓰기 공부가 이것을 키워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쓴다고 자부하는 학생들도 하버드대에서 요구하는 글쓰기 수준이 고교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한다. 2001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부생 대부분은 ‘교수들이 매우 폭넓고, 심오한 글쓰기 능력을 요구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대 글쓰기 강좌의 명칭은 ‘논증적 글쓰기 수업(Expos, Expository Writing Program)’이다. 의역하면 ‘대학 학술 작문 수업’으로 하버드대 차원에서 전력을 기울이는 유서 깊은 강좌다. 서부개척시대에 해당하는 지난 1872년에 ‘Freshmen English’라는 글쓰기 과목을 개설한 이후 모든 하버드대 신입생이 필수적으로 한 학기 동안 이것에 뿌리를 둔 강좌를 수강했다.
하버드대 글쓰기 수업에서 증명된 사실은 꾸준히 노력하면 문장력을 확실하게 기를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학업 의지다. 글을 완성하는 데 급급한 학생들은 효과가 적다. 배운 것을 복습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새로운 주제를 탐구하고, 글쓰기 방법을 창의적으로 개척하는 학생들은 실력이 쑥쑥 오른다. 하버드대 글쓰기 교육을 총괄 지휘하는 토마스 젠 교수, 제임스 헤론 교수의 도움말과 하버드대 자료를 참고해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소개한다.



◇1대1 첨삭지도 후 격렬한 토론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듣는 하버드대 학생들은 다른 어떤 과목보다도 교수들의 관심을 듬뿍 받는다. 일방적인 강의 전달식 수업이 아니라 1대1로 꼼꼼하게 첨삭지도를 병행하는 강좌이기 때문이다. 또 교수와 학생이 한 학기에 적어도 세 차례 1대1 토론(1대1 정밀 첨삭지도)을 한다. 교수가 학생과 자주 만나 첨삭 지도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해 준다. 한 반의 정원은 최대 15명이고, 교수 한 명이 2개 반 이상을 맡지 않아 알찬 수업이 가능하다.
논증적 글쓰기 수업은 세미나 식으로 진행한다. 학생들이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격렬하게 토론하도록 유도한다. 글쓰기 주제와 관련한 자료를 정독하고 적극적으로 분석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가 없다. 하지만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좀 더 흥미롭고 논쟁적인 글쓰기 주제를 개발하고 나아가서 창의적인 논리를 세우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이를 테면 학생들은 배경지식을 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주제가 나와도 글을 잘 쓸 수 있는 응용력을 키우게 된다.



◇초안쓰기·고쳐쓰기 계속 반복
 철저하게 다시 고쳐쓰기를 하게 하면서 문장 수준을 끌어올려준다. 학생들은 한 학기에 보통 세 가지 주제로 글을 쓴다. 물론 단순하게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자료를 분석하고 토론한 결과물을 풍부하게 글에 담는다. 이 때 처음에 쓴 글에 첨삭 지도를 받고 수정본을 작성하여 또다시 점검 받는다.
조언을 참고하여 초안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수정본을 쓰다보면 좀더 깊이있는 글을 쓸 수 있다. 이를 테면 초안 쓰기와 다시 고쳐쓰기를 반복하면서 ‘전략적 논리 만들기’, ‘논리와 아이디어로 뒷받침된 설득력 기르기’ 등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 과제물에 첨삭이나 총평을 해 주지도 않고 달랑 학점을 매기는 한국의 일부 교수들과는 분명하게 차이점이 있다.



◇주장 뒷받침하는 논거 찾기
 논증적 글쓰기 수업에서 글쓰기와 읽기에 들어가는 시간은 거의 같다. 쓰기 못지않게 배경지식을 담은 읽기자료를 충분히 읽고 학생들의 관점을 세우게 한다는 말이다. 곧, 다양한 읽기자료를 참고하여 학생들 자신의 생각으로 재정리하여 글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제대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배경지식과 직간접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글의 주제(주장)를 뒷받침할 수 있는 논거를 찾도록 읽기와 토론을 하고 그 다음에 글을 쓰게 한다.
학생들은 이 수업에서 한 편당 5~10쪽 분량의 에세이 3편을 써야 한다. 물론 읽기자료를 그대로 베끼는 것은 곤란하다. 에세이를 쓴 뒤에 한 차례 이상 교정을 봐야 한다. 글을 고치기 전에 글쓰기 교수와 면담하고 조언을 듣는다. 이 과정은 빠르게 반복적으로 진행된다. 이것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훈련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증적 글쓰기 수업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시간 관리를 해야 한다.



◇문학·역사 등 주제별 20개 코스
 논증적 글쓰기 수강생들은 수십 개의 코스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수강한다. 이것을 온라인 섹션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 종류는 문학, 역사, 인류학, 사회학, 예술, 정치, 철학 등 다양하다. 이를 테면, 논증적 글쓰기에서 써야 할 글의 주제를 학생들 스스로 고르게 한 뒤에 같은 종류를 고른 학생들을 한 반에 편성하는 것이다. 그 리스트는 www.fas.harvard.edu/!expos에 있다. 학생들은 이 중에서 좋아하는 순서대로 8개의 코스를 고르면 된다. 특별한 선택 기준은 없다. 관심이 쏠리는 주제를 고르기도 하고 과거에 흥미를 갖지 않던 생소한 주제를 선택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온라인 섹션 프로그램에서 프랑켄슈타인부터 막스, 대법원 상고 사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종류의 자료를 읽는다. 또 이것을 소화하기 위해 ‘단편 소설의 기술’, ‘표현의 자유’, ‘셰익스피어’, ‘인류학’, ‘현대 미국 정치에서의 수사학’, ‘학살의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 학생들은 이 같은 주제를 조사한 뒤 의문점을 제기하고 글로 엮어내는 훈련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