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나재필의 Feel <23>


 고교시절, 고등학생에게 털렸다. “센터 까서 돈 나오면 10원에 1대…” 순순히 내놓으라는 협박이었다. 결국 갖고 있던 전 재산 5000원을 미련 없이 내놓았다. 당시, 벼린 칼이 두려웠던 게 아니라 그냥 더러웠다. 살면서,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먼저 나온다. 굴욕의 웃음이 아니라, 피식! 바람 빠지듯 비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칼’에 맞섰어야 했을까, 아니면 온몸으로 ‘칼’을 받아내서라도 자존심을 지켜야했을까. 그 냉정과 열정 사이의 물음은 가끔 꿈속에서도 나의 빈 호주머니를 털어가고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저항하지 않았던 것이 ‘냉정’이었고 5000원을 내놓은 것이 ‘열정’이었다. 다시 한 번 얄개시절, 비폭력주의에 경의를 표한다.
도시는 사람에 의해 탄생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이 도시에 의해 난도 당하고 있다. 오로지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도시를 만들고자 했으나, 탄생한 건 콘크리트 정글일 뿐 이도저도 아니다. 성서는 고대의 거대도시 바빌론사람들이 바벨탑을 세워 신에게 도전한 오만함을 처벌하기 위해 인간끼리 서로 말이 통하지 않도록 벌을 주었다. 누구나 인류를 변화시키려고 한다. 물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 자라고 있는 ‘작은 야생(野生)’ 때문이다. 야생에서 왔기에 야만적이고 무례하다. 그 무례함은 미개한 분장을 뒤집어쓰고 전진하는 게 아니라 퇴보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매일 밤 다운타운이든 미드타운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수들의 축제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또 한 번 살아있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축하하는 자리다. 또 하루 잘 버텼다는 핏빛 향연이다. 땀을 바쳐 일한 그 수고로움은 ‘열정’이지만 급여는 항상 순진한 노동자들을 겁박하며 ‘냉정’하고 보수적이다. 더구나 무주공산의 이 서식지에서는 ‘없는 돈’도 빼가려는 맹수들로 들끓고 있다. 이 완고한 생몰년(生沒年) 미상의 삶은 더 이상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유?무죄를 평가하려고만 한다. 그냥 생지살지(生之殺之)다.
잠들지 않는 도시, 골방 좁은 침대에 웅크린 무명씨가 바로 봉급쟁이다. 서로 부비며 살고 있지만, 또한 부비며 죽이고 있다. 분노할 자격도 잊었으며, 자신들의 눈물을 받아들일 가슴도 잃어가고 있다. 이름 하여 ‘더 시티(The city)’, 줄여서 ‘더티(dirty)’다.
“당신에게 내 몸을 바치겠어. 몸을 팔아서라도 당신에게 돈을 바치겠어. 당신에게 영혼을 팔 테니 당신은 나에게 돈을 주시오.” 용병처럼 자신을 팔아넘기길 강요하는 도시생활과 직장생활은 인간의 지저분한 본능을 강요한다. 그래서 처음엔 열정을 이야기하다가도 결국 냉정해지라고 경고한다. 열정을 바치지 않으면 죽는다고 협박하면서, 종장엔 냉정을 따진다.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애먼 놈’은 목숨을 부지하거나 죽는다. 결론은 ‘몸으로 일하고 몸으로 보상 받으라’다. 땀 냄새의 농도가 일의 강도이자 월급봉투의 무게다. 구호가 요란할 땐 주위를 돌아보라고 한다. 가장 화려할 때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우리의 편집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냉정인가? 열정인가? 무례하지 않다면 이에 대한 답은 내리지 마시라. 이 논제의 답은 없다.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열정의 편집을 해도 졸작이 되기도 하고, 냉정의 편집을 해도 졸작이 나온다. 이 냉온탕의 비등점은 언젠가 빙점(氷點)에서 대척을 이루며 ‘걸작’을 향해 끓거나 식을 뿐이다. 편집은 갑자기 굴기(?起)하지 않는다.
밤새워 통음하며 편집을 얘기하던 주체들은 소멸 중이다.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면 애써 붙들고 있는 거다. 편집을 너무 사랑했지만, 언젠가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강산이 두어 번 바뀔 동안 편집을 ‘편리’하게 생각했으니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편집이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불편해진 것이다. 다만 열정을 가졌을 때가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이었다는 독소조항은 분명 달아야한다. 걸작과 졸작 사이에서 통음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건 초절정의 주검이다. 자신의 주검을 자신이 보는 것만큼 죽은 것도 없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몸을 바쳐 일하라는 세상은 냉정하다. 몸을 바쳐 일하는 것은 열정이다. 하지만 모두 다 불찰이다. 열정과 냉정은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함께 간다. 과연 인생의 방향키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 또한 바로 인생의 주체인 자신에게 있다. 열정을 갖고 냉정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