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 도시가 먹는 법 <11>인천


사진설명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식당 ‘공화춘’. 현재는 짜장면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짜장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9세기 아시아는 강제 개항의 시대였다. 영국에 의해 중국의 항구들이 열리고 미국에 의해 일본의 항구들이 개항됐다. 1861년 산둥반도의 옌타이(烟台)도 개항된다. 옌타이와 마주한 인천의 제물포항은 1883년 조선에서 제일 처음 일본에 의해 개항된다. 개항되기 1년 전 임오군란 때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는 1882년부터 명동에 터를 잡고 영사 업무를 시작한다. 청나라 군대와 일본인은 물론 서양인들이 앞다투어 제물포를 통해 조선에 들어오면서 제물포는 조선식 외식은 물론 외국의 외식이 처음으로 자리를 잡는다. 수많은 청요리점과 일본 요릿집과 서양식 레스토랑이 혼재한 국제적인 항구가 된다. 중국의 화상들과 노동자들이 밀려들면서 중화요리는 꽃을 피운다. 1883년부터 부두로 사용된 항구 뒤편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이 형성돼있다. 번성과 쇠락을 거듭했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힘이 강해지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식당이었던 ‘공화춘’은 현재 짜장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짜장면의 발상지로 알려진 공화춘은 현재까지 이름과 가게가 남아있지만 창업주와는 상관이 없다. 짜장면도 공화춘에서 만든 것도 아니다. 제일 먼저 식당에서 팔았다는 의미다. 중국 어디를 가도 짜장면을 파는 중식 요릿집은 없다. 짜장면은 중국에서도 서민들이 먹던 간편식이었다. 한국식 짜장면의 조상인 중국의 자쟝몐(Zhajiangmian: 炸醬麵)은 크게 보면 황장(黃?)을 면장(面?)으로 사용하는 베이징식과 밀가루를 발효시켜 만들어 단맛이 나는 첨면장(?面?)을 사용하는 산둥식으로 나뉜다. 1920년대 이후 한국의 화교는 대개가 산둥지역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첨면장을 직접 담가 짜장면을 만들어 먹거나 팔았다. 짜장면은 중국의 부두 노동자인 쿨리들이 즐겨 먹던 길거리에서 팔던 음식이었다.
1945년 중국의 공산화 이후 산둥과 한국과의 교역이 끊기자 한국식 면장인 춘장(春醬)이 만들어진다. 춘장은 중국에는 없다. 춘장은 산둥식을 기본으로 베이징식이 가미된 독특한 면장이다. 단맛이 돌면서 걸쭉한 춘장은 배달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식성과 맞아 떨어지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탄생한 짜장면은 1960년대 시작된 분식의 시대를 거치면서 최고의 외식으로 등장한다.
차이나타운 입구에 있는 ‘신승반점’은 작고 소박한 식당이지만 공화춘 창업주의 외손녀가 운영하는 가게다. 이곳의 짜장면은 걸쭉한 짜장 소스를 기본으로 한 한국식 짜장면보다 면장이 살아있는 중국식 자쟝몐에 더 가깝다. 짜장면 위에 기름에 튀겨낸 계란프라이 한 점이 올라간 것도 재미있다.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중국식 수제 교자 전문점인 ‘원보’는 짜장면을 팔지 않는다. 중화요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초창기에는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꾸준히 교자와 요리를 만들어 온 탓에 마니아들이 많아지면서 교자 맛도 더 정교해지고 좋아졌다. 간판메뉴인 왕만두는 한문 부제로 로우빠오즈(肉包子)가 붙어있다. 만두 안에 고기를 기본으로 한 소와 육즙이 가득한 것이 특징이다. 한쪽 면만을 구워낸 군만두는 오래전 먹던 만두 맛을 간직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국집에서 군만두는 서비스로 전락했지만 한 면은 아삭하고 반대 면은 촉촉한 군만두의 맛은 서비스로 취급될 만큼 만만한 음식이 아니다.
차이나타운과 좀 떨어져 있는 짬뽕밥으로 유명한 ‘용화반점’도 인천의 중국식당을 이야기할 때 빼놓으면 안 되는 집이다. 불 맛이 제대로 살아있는 고슬한 밥이 인상적인 볶음밥과 이 집의 간판 메뉴인 칼칼한 짬뽕밥 때문에 인기가 많다. 짬뽕밥에 계란프라이가 올라가는 것도 드문 요리법이다.
1호선 전철의 종점인 인천역 바로 앞의 동인천역 주변에는 대중적인 식당들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동인천 2번 출구에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동인천삼치거리가 나온다. 싸고 양 많고 적당한 기름기를 지닌 삼치는 서민들의 인기 메뉴다. 1960년대 말부터 ‘인하의 집’과 ‘인천집’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가게는 현재 17여 곳으로 늘었다. 인천집이나 인하의 집에서 삼치구이를 시키면 삼치를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튀겨준다.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 덕에 젊은이에서 주머니 가벼운 술꾼들까지 저녁이면 불나방처럼 모여든다. 왕 삼치 한 마리를 시키면 50㎝는 됨직한 커다란 삼치 한 마리가 나온다. 양념치킨에 발라먹는 달달하고 매콤한 소스가 딸려 나온 탓에 양념 반 프라이드 반 방식으로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치킨의 짝이 맥주라면 삼치의 짝은 막걸리다.
삼치골목에서 걸어서 오 분 정도 가면 오랫동안 인천의 밥상으로 유명한 신포시장이 나온다. 만두 체인으로 유명한 ‘신포만두’의 신포란 글자는 신포시장을 의미한다. 신포시장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19세기 말에 시작된 시장은 일본인, 중국인, 서양인 등을 상대로 채소를 파는 ‘푸성귀전’으로 시작된 곳이다. 신포시장의 수많은 먹거리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것은 닭강정이다. 평일에도 닭강정을 파는 가게에는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넘쳐난다. 물엿을 기본으로 하고 청양고추를 포인트로 사용한 탓에 신포시장의 닭강정은 달콤하고 매콤하다. 이런 달달하고 자극적인 맛을 젊은이들이 싫어할 리 없다. 젊은이들의 절대적 지지 속에 70년이 넘은 신포시장 닭강정의 인기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신포시장에는 산둥식 과자를 파는 가게도 있다. 우리가 보통 공갈빵이라 부르는 산둥식 빵과 꽈배기 같은 음식들은 간식으로 손색이 없다. 오랫동안 동인천과 인천역 주변은 인천의 중심이었지만 송도, 청라지구 같은 신도시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2000년대 침체를 맞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복고 열풍, 다양하고 오래된 먹거리들의 인기에 힘입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동인천 일대에는 1970년대와 80년대 최고급 외식의 상징이었던 경양식집들도 제법 남아있다. 크림스프와 고기, 밥과 샐러드를 함께 먹는 문화는 서양음식을 일본화한 서양식 일식으로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햄버거 패티를 스테이크 대신 활용한 함박스테이크와 스테이크의 대명사 안심스테이크, 쇠고기로 만든 돈가스 같은 음식인 비프커틀릿, 생선으로 만든 돈가스인 생선가스까지 40대 이상 사람들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음식들이 가득하다. 인천 4대 경양식집으로 불리는 ‘등대경양식’ ‘국제경양식’ ‘씨싸이드 경양식’ ‘잉글랜드 왕돈가스’가 모두 동인천에 있다.
인천의 냉면은 백령도식 냉면과 화평동식 서민 냉면으로 크게 양분되어 있다. 백령도식 냉면은 해주를 중심으로 한 평안도 실향민들이 백령도에 피난 생활을 하면서 생겨난 음식문화다. 메밀에 밀가루를 섞은 굵은 면발과 까나리 액젓을 넣어 단맛이 강하게 나는 육수를 공통된 특징으로 한다. 화평동 냉면 골목은 1980년대 인근 화수시장에서 시작된 후 전성기 때는 30곳이 넘을 정도로 유행한 냉면 문화다. 냉면 맛은 평범하지만 커다란 그릇에 엄청난 양을 주는 탓에 ‘세숫대야 냉면’으로 불리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유행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인기는 많아 아직도 10여 곳의 가게가 영업 중이다.
인천에는 부대찌개를 잘하는 식당들도 제법 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말 ‘오소래’란 식당에서 인천 최초의 부대찌개 문화가 시작된다. 뒤를 이어 ‘양지부대고기’와 ‘지금은 사라진 ‘서라벌’이 유명했다. 인천의 부대찌개는 사골 국물에 대파와 팽이버섯, 콩나물이 듬뿍 들어가고 다진 마늘과 마늘 가루로 맛을 낸다. 고기는 민찌가 아닌 일반 쇠고기를 넣는다. 야채가 많이 들어간 탓에 시원한 국물 맛이 많이 난다. 모듬철판은 감자와 양파, 양송이버섯에 스팸과 베이컨, 소시지에 등심을 구워 먹는다. 마늘과 후추로 간을 해 강한 맛이 난다. 대체로 서울 남영동식 스테이크와 비슷한 레시피의 메뉴를 판다.
잡으면 금방 죽은 밴댕이란 작은 생선도 인천을 대표하는 외식이다. 밴댕이 머리와 내장, 비늘, 가시 등을 떼어낸 후 한치와 함께 썰어 넣고 미나리, 오이, 당근 등을 함께 버무려 내는 밴댕이 회무침은 물론 한치회무침 준치회무침, 전어회무침 등 계절별 생선들을 무쳐내는 가게들은 연구구청 주변에 많다. 개항과 동시에 시작된 본격 외식의 무대인 인천에는 외국과 실향민이 섞이거나 결합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음식문화가 꽃을 피웠다.

맛칼럼니스트 박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