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신우성의 편집기자와 글쓰기 <4> 美 MIT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

보스턴에 위치한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는 글쓰기 교육과 관련이 적은 것처럼 보인다. 이공계 대학이 주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MIT는 전 세계 그 어느 대학보다도 엄청나게 많은 예산을 들여 글쓰기를 교육한다. 글쓰기 강사 교육용 예산만 해도 1년에 약 2백만 달러라고 한다. 그 이유가 궁금해 MIT를 찾아갔다.

2007년 10월, MIT 지하철역에서 이 대학의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까지 가는 길은 마치 미로 같았다. 우중충한 건물 여러 채를 거친 끝에 입구를 찾았다. 공장 건물과 부지를 개조해서 그런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건물은 낡고 비좁고 일부 강의실은 지하에 있었다. 아름다운 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센터에 들어서자 글쓰기 도우미(Writing tutors) 아만다 소벨씨와 수산 스필레키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박사 후 과정인 한국인 김성재 박사도 자리를 함께했다. “아무리 훌륭한 연구를 해도 논문으로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 할 수 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천재성이 묻혀 버립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 글쓰기를 전 학년에 정규과목으로 두고,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까지 설립했습니다.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 값진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글쓰기를 활용한 소통 능력이 필요합니다.”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의 스티븐 스트랑 소장은 MIT가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게 된 일차적인 계기는 졸업생들이 건의를 한데 있었다고 말했다.
“1980년 무렵, 글쓰기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라는 건의를 졸업생들에게서 많이 받았습니다. 사회에서 생존하는 데 글쓰기가 꼭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대부분 기술자와 과학자인 그들은 업무의 35% 이상이 글쓰기와 관련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MIT는 유능한 사회인을 배출하려면 글쓰기를 필수과목으로 정하고 글쓰기센터를 설립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학문 연구와 사회생활에 문장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글쓰기 교육을 중시한 것이다. 창의적인 과학기술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것을 정확하게 표현하여 널리 알리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MIT에서는 단순한 글쓰기뿐만 아니라 문건을 편집하는 방법, 조리 있게 발표하는 기술도 지도해 준다고 한다. 주요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해 본다.


─글쓰기를 하면 창의·사고력이 좋아질까
“흥미로운 질문이다. 책을 읽은 뒤 자기생각으로 정리하면서, 다시 말하면 글로 옮겨 적으면서, 생각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내 주장에 동의하도록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적인 근거를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 공부를 하면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를 수 있다. 글쓰기와 창의력 향상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글쓰기를 하면 학업과 업무능률이 오른다고 생각한다.”


─‘성공의 지름길’에 문장력도 포함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을 해야 한다. 또 읽는 사람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서 자기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여 전달할 것인지 연구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의사소통 능력이 우수해 대인관계도 원만하다. 그러므로 글쓰기 실력은 궁극적으로 성공 기회를 넓혀 준다. 실제로 많은 분야의 일이 글쓰기와 밀접하게 연관되기도 한다. 그래서 MIT에서도 글쓰기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학생들이 공통으로 잘못을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우리는 문맥을 잘 연결하지 않으면 좋은 글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의외로 글의 흐름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 많은 생각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작은 문장으로 각각 표현하다보니 중간중간 문맥이나 단락을 부드럽게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글을 수정할 때 머릿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 독자가 좀 더 능률적으로 글을 독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다른 대학들은 ‘글쓰기센터’로 부르는데 MIT는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로 부른다.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하게 글쓰기만 지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보고서, 논문은 물론 이력서, 소설, 시, 수필, 단행본 원고,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산문, 사업 제안서 등 모두 점검해 준다. 이 밖에 논문·보고서 발표와 취업 면접 등 프레젠테이션도 지도한다. 연설문 쓰는 법, 시각자료 사용법, 과학·비과학적 정보를 소개하는 법도 교육한다. 의사소통에 필요한 교육을 총체적으로 하는 것이다.”


─글은 어떤 식으로 검토해 주는가?
“문장 표현과 글 구성, 문법까지 점검할 뿐만 아니라 글씨 크기, 글씨체 등 편집 측면에서도 조언해 준다. 학술 논문이나 자기소개서, 이력서는 물론 구두로 발표하는 지문도 완전히 뜯어고쳐 준다. 졸업생과 교직원, 가족도 무료로 이용하게 한다.”


─어느 단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나?
“글을 쓰기 전, 곧 생각을 하고 탐구하는 단계에서부터 초고 쓰기, 초고 수정, 편집 단계까지 지도받을 수 있다. 또 채점을 받기 위한 글을 제출하기 전에도 조언을 구할 수 있고, 평가받아 돌려받은 글을 수정할 때도 도움을 받는다. 이에 더해 글쓰기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논술시험을 치르는 방법, 글을 수정하기, 출처 첨부하기, 글쓰기 과제 분석하기, 과학적 정보 소개하기까지 두루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


─이공계 주제로 쓴 글을 손질하는 게 재미없을 수도 있을 텐데.
“그렇지 않다. MIT의 모든 학생은 각자 흥미로운 과제를 연구한다. 그래서 이들의 글을 볼 때마다 색다른 경험을 맛본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니 오히려 재미있다.”


─학생 한 명당 한 번에 얼마나 지도하나.

“50분간 지도한다. 정신없이 바쁘다. 우선, 학생 글을 충분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 다음에 대화를 하면서 창의적인 연구 결과를 능률적으로 보고서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는다. 이 일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은 글쓰기 도우미들에게 과제라고도 할 수 있다. 한 명당 50분이란 짧은 시간만 할애하기 때문에 좀 더 효율적으로 도와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글쓰기와 인문학 과정(PWHS)’은 무엇인가.
“글쓰기를 활용하여 인문학적 지식을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학문의 기초를 쌓는 프로그램이다. MIT에서 무척 특별한 과정이다. 학생들은 소설, 시 등 전문적인 글쓰기를 전공으로 택할 수 있다. 석사 과정에 대중을 위한 과학 글쓰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