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이 도시가 먹는 법 <10> 서울의 새로운 식당 트렌드


2014년 2월 24일 싱가포르 카펠라 리조트에서 ‘2014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 선정 행사가 있었다. 신사동에 있는 ‘정식당’은 20위에 선정됐다. 상당한 권위를 지닌 행사에서 한국 식당이 선정된 것은 처음이었고 유일했다. 음식계의 세계적인 기준인 미슐랭 가이드는 나라가 아닌 도시를 상대로 가이드북을 발행한다. 이웃 일본은 도쿄와 교토, 오사카, 삿포로까지 여러 도시가 포함됐지만 한국은 어떤 도시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서울의 레스토랑들의 수준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몇 년 안에 미슐랭 가이드가 발행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수준 높은 한국인 쉐프들과 외국인 쉐프들, 소믈리에, 파티쉐들이 레스토랑을 새롭고 내고 있고, 손님들의 인식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정식당은 쉐프 임정식이 운영한다. 2009년 문을 연 정식당은 ‘뉴 코리언(New Korean)’이라 부르는 퓨전 한식을 선보인다. 한식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지만, 세계적인 레스토랑 트렌드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2011년 뉴욕 트라이베카에 ‘정식(Jungsik)’을 개업했고 그 해 미슐랭 1스타를 받았다. 다음 해 2스타를 받았다. 범죄 지역이었던 트라이베카는 1990년대 이후 세계 미식의 격전구가 되었다. 미식의 중심은 파리를 떠나 유럽은 스페인, 덴마크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신대륙에서는 뉴욕이 1980년대 이후 진원지가 되었다.
정식당은 단순화된 식기와 분위기에 삼겹살을 이용한 보쌈, 머루 프아구라, 매생이 로조토, 구운 와규 비프에 김칫국물을 곁들여 내는 정식 스테이크 같은 프렌치와 한식이 결합한 요리는 물론 고속도로 휴게소의 대표 간식인 알감자, 핫바, 호두과자를 이용한 음식까지 그동안 우리가 편하게 먹던 요리들을 세련된 솜씨로 재단해 접시에 그림처럼 담아낸다. 음식을 먹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스토리를 담아내는 것까지 생각하는 재치와 감동이 있다. 뉴욕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장의 라면을 중심으로 한 식당인 ‘모모푸쿠’도 유명하고, 후니 킴이 연 레스토랑 ‘단지’도 미슐랭 1스타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유명했던 가회동 ‘오키친’, 이태원 ‘오키친2’를 거쳐 2013년에 광화문에 문을 연 ‘오키친3’은 이탈리안 요리로 많은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다. 일본인 쉐프 스스무 요나구미와 그의 한국인 부인 오정희가 음식을 디자인하고 한국인 이경호 쉐프가 요리를 지휘하는 이탈리아식 고기요리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레스토랑 입구에는 요즘 유행하는 드라이 에이징 쇠고기들과 햄들이 숙성고에서 맛을 키운다. 오키친3은 육류에 포인트를 두었다. 이 레스토랑의 시그니처(대표) 메뉴인 포르게타(돼지 몸통을 통째로 짭짤하고 지방질이 많은 상태로 요리한 이탈리아 전통 요리), 돼지머리 편육, 목살 요리들과 직접 만든 생햄도 인기가 많다. 오키친3의 포르케타는 돼지고기 삼겹살을 오븐에 구운 것이다. 샐러드와 수프 같은 소박한 이탈리안 식 요리는 품위가 있고 맛있고 섬세하다.
스스무 요나구미와 부인 오정희는 원래 요리학원을 먼저 열고 후에 실습을 위해 식당을 연 탓에 오키친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다 두 사람의 제자들이다. 요리의 철학과 방법이 같지만, 개인의 개성을 최대한 살린 탓에 오키친3은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정식당, 오키친3 같은 정식 코스 요릿집들과 함께 최근 들어 피자나 스테이크처럼 외국의 대중 음식들을 제대로 만들어 파는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학로에서 2013년 가을에 문을 연 ‘핏제리아오’는 피자의 메카 나폴리식 화덕피자와 파스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핏제리아오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7년간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고 주목받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보나세라’에서 수석쉐프를 지내다 핏제리아오로 옮긴 박민규쉐프가 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물론 쉐프라는 직업을 인기 직종으로 인식하게 한 <파스타>란 드라마의 모델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는 보나세라의 현 쉐프 샘킴과 박민규였다.
피자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만든 피자가 전 세계적인 대중 음식이 되었지만, 나폴리의 피자는 485℃의 열을 순식간에 낼 수 있는 장작 화덕은 기본이고, 둥근 모양을 가져야 하는 피자 두께는 겉과 가운데가 모두 다른 기준점 등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마르게리타 피자에서 악마의 맛이라는 루콜라는 이용한 디저트 피자까지 다양한 피자를 제대로 한다. 피자는 토핑이 개성을 나타내지만, 질은 맛있는 도우에서 나온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인들은 이탈리아 피자 도우보다 부드러운 것을 선호한다. 파스타도 수준급이다.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국물이 거의 없는 음식이다. 피자가 도우에 중점을 둔다면 파스타는 단연코 면이 중요하다. 잘 삶아 내는 게 핵심이다. 이탈리안 식의 국물 없는 파스타와 함께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위한 파스타도 함께 먹을 수 있다.
청담동 신사동에서 시작된 스테이크 열풍은 동대문에까지 상륙했다. 서민적인 분위기의 동대문에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호텔이 문을 열면서 들어선 ‘BLT스테이크’는 ‘피터 루가 스테이크(Peter Lugar steak)’, ‘볼프강 스테이크 하우스(Wolfgang's steak house)’와 함께 뉴욕의 3대 스테이크 하우스로 꼽히는 집이다. 고기 구워 먹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스테이크는 그동안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스테이크는 좋은 고기, 제대로 갖춘 장비와 쉐프의 솜씨가 두루 갖춰져야 만들 수 있는 까다로운 음식이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이 아이징(쇠고기를 마르게 건조,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보통 28일 전후로 숙성시킨다.) 스테이크가 유명하다. 드라이 아이징된 쇠고기는 감칠맛이 현저하게 증가한다. 숙성을 많이 시키면 치즈 맛도 난다. 스테이크의 속도 밀도와 조직감이 좋다. 겉과 속이 차이가 나지만 일정한 식감을 유지하는 것도 드라이 아이징 스테이크의 특징이다.
빵과 스테이크라면 상수역 근처의 ‘페페로니’도 만만치 않다. 어느 한 집이 아니라 전반적은 외식의 수준이 고르게 올라있음을 알 수 있고 세밀하게 나뉘고 있다. 양식뿐만 아니라 일식 음식도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호텔의 고급 일식당이 아니면 제대로 된 일식 요리를 맛보기 힘들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말이 무색하게 되었다.
홍대와 연남동 주변에 실력 있는 이자카야 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망원역 주변에 위치한 ‘카덴’도 주목받는 신세대 이자카야다. 일본 최고의 조리학교인 ‘츠지 조리학원’을 졸업한 정호영 쉐프가 2년 전에 문을 연 카덴은 재료의 본 맛을 살린다는 일본 요리 철학에 기반을 두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겨울에는 10㎏이 넘는 대방어를 두툼하게 썰어내고 봄이면 100㎏이 넘은 국내산 다랑어를 맛볼 수 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국내 연안에서는 거의 잡히지 않던 다랑어들이 제주 근해에서 무더기로 잡히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일본에 수출했지만 최근 들어 서울과 부산의 유명 일식집과 이자카야들이 본격적으로 구입하면서 국내에서도 이런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다랑어는 크면 클수록 맛있는 대표적인 생선이다.
카덴의 자매 레스토랑인 ‘우동 카덴’도 눈여겨볼 만한 식당이다. 우동의 나라 일본을 대표하는 사누키 우동을 제대로 하는 곳이다. 사누끼 우동은 면발에 가장 많은 공을 기울인다. 사누끼 면발은 발로 밟아 만든 ‘족타면’이다. 두꺼운 면발은 졸깃함은 기본이고 표면이 매끄러워 식도를 타고 쉽게 넘어가야 한다.
여의도에 있는 참치를 기본으로 한 이자카야 ‘쿠마’도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100㎏이 넘는 참치가 국내에서 잡히지 않으면 일본으로 넘어가 직접 사온다. 그런데 이런 집들에 가면 공통으로 좋은 맥주를 판다. 막걸리 열풍이 지나간 자리를 질 좋은 맥주가 메우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서울의 수제 맥주 열풍은 강하고 거세다. 진원지는 이태원과 경리단이다. 3년 전부터 본국에서 먹던 맥주를 마시자는 소박한 취지에서 시작된 외국인들의 수제 맥주 제조와 판매는 내국인들이 가세하면서 이태원의 밤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경리단 옆의 ‘크래프트 비어’, ‘맥파이’에는 향과 맛이 깊은 수제 에일 맥주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국내에서 만든 ‘세븐브로이’ 같은 에일 스타일의 맥주가 가세해 전체 맥주 시장이 요동칠 정도로 에일 스타일의 수제 맥주 열풍은 강하다. 우리에게 맥주는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의 대사처럼 ‘치맥(치킨과 맥주)’인 것과 달리 외국인들인 ‘피맥(피자와 맥주)’을 먹는다. 외식의 거대한 변화가 서울에서 본격화 되고 있다.

맛칼럼니스트 박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