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신우성의 편집기자와 글쓰기 3>

2007년 10월, 미국의 교육도시 보스톤에서 서쪽으로 승용차를 타고 달렸다. 차창 밖의 단풍이 마치 한국의 가을철 고속도로 주변 풍경과 비슷했다. 두 시간 만에 메사추세츠 주의 앰허스트에 위치한 UMASS대학교(University of Massachusetts at Amherst)에 도착했다. 전원도시인지, 숲속인지, 대학교 교정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드넓은 잔디구장과 체육관을 지나 중앙도서관 한켠에 위치한 글쓰기본부(Writing Center)에 들어섰다. 약 40평 규모에 깔끔하고 세련하게 꾸민 공간으로 글쓰기 도우미(Tutors) 세 명이 학생들 글을 점검하고 있었다. 글쓰기본부는 학생들이 글쓰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기관이다. UMASS대학은 1대1로 학생들의 글을 점검해 주는 글쓰기본부를 모범적으로 운영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대학의 글쓰기본부를 취재하려면 UMASS대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추천이 들어왔을 정도다. UMASS대학교 글쓰기본부의 패트리샤 주코우스키 소장에게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 편집기자들이 후배들을 교육하는 데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본부는 어떤 곳인가
“글쓰기 도우미가 상주하면서 학생 글을 평가하고 좀 더 좋은 글을 쓰도록 조언해 주는 곳이다. 상징적으로 표현하면, 생각을 체계 있게 정리하여 글로 출력할 수 있도록 하는 글쓰기 재충전소다. 학생들이 서로 어울려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따스한 공간이기도 하다. 학생 글을 언제나 돌봐줄 수 있는 조언자가 있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글쓰기를 장려하고 자신감을 갖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글쓰기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나
“글쓰기는 황금을 찾는 과정과 같다. 남의 글을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고, 자신도 직접 글을 쓰면서 금 조각 같은 생각을 찾아내서 구체화하는 게 바로 글쓰기 아닌가.(글쓰기를 하면서 수많은 생산적인 일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어 ‘황금을 찾는 과정’이라고 비유. 모든 학문과 업무가 글쓰기와 연관되어 있으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글을 잘 쓰기 위한 비결은 무엇인가
“첫째, 글쓰기를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일단 글을 그냥 시작해라. 가급적 많은 분량의 글을 써 봐라. 글에서 전하려는 내용을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버려라. 일단 불완전하게라도 초벌 쓰기를 하면서 좋은 생각을 얻을 수 있다.
둘째, 그 다음에 정확한 문장을 만들고, 문장들을 모아 단락 구성에 들어가라. 내가 누구를 위해 글을 쓰고, 그들의 관심을 어떻게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을지 연구하면서 작성하면 된다. 내 생각이 독자에게 흥미있게,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정리하여 표현하라는 말이다.
셋째, 글을 쓰면서 큰 소리로 읽어보는 것이 좋다. 이 방법은 정말로 훌륭하다. 이렇게 자가점검하면 중심내용을 잘 전할 수 있는 글로 다듬을 수 있다. 문법이 잘못된 곳을 찾는 데에도 유리하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은 이 방법이 효과적이다. 글을 쓰고 큰 소리로 읽어가면서 손질하는 게 글쓰기의 비법이다.”


─글쓰기본부에서 글쓰기 도우미들이 직접 글을 고쳐 주기도 하나
“글을 대신 써 주지는 않는다. 잘못된 부분을 직접 고쳐 주지도 않는다. 학생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데 그친다. 이를 테면 자기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단해 주고 스스로 교열 보는 방법을 가르쳐 줄 뿐이다. 글을 대신 고쳐 주면 문장력이 오히려 떨어진다. 학생들이 독립적으로 글을 잘 쓰게 하는 게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글쓰기 도우미의 지도를 받을 때 최대한 말을 많이 하라고 강조한다. 글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도우미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좀 더 좋은 생각을 끄집어 내도록 하는 것이다. 글쓰기 도우미는 학생이 말을 많이 할수록 그가 글에서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분명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도우미는 ‘그거 정말 좋은데’, ‘그걸 한 번 적어봐’, ‘바로 이게 네가 원했던 거야’ 하는 식으로 학생과 대화하면서 글을 풀어나가게 도와준다. 학생은 그 조언을 컴퓨터에 입력하기도 한다. 도우미도 학생의 문장력 향상 과정을 기록한다.”


─왜 그런 식으로 시키는가
“이렇게 하면 글에서 좀 더 중요하게 전달해야 할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수가 있다. 이것을 성찰적 글쓰기 혹은 과정적 글쓰기(Reflective Writing or Processive Writing)로 부른다. 학생들은 주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이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글을 수정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글쓰기 도우미와 학생들은 서로 의사소통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글을 고친다. 한번 고치고 마는 게 아니라 글쓰기 도우미를 만나 추가로 도움말을 듣고 또 고쳐쓰기를 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다시 고쳐쓰는 게 필수과정이다.”


─글쓰기 특강도 개설하나
“학생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들을 정해 특강을 한다. 예를 들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쓰는 법, 페이퍼를 파워포인트로 바꾸는 방법을 배운다. 가급적 실용적인 내용으로 특강을 한다. 구두점을 어디에 찍고, 단락은 어떻게 나누고, 문장의 길이는 어느 정도로 할까 등이다. 또 교수들과 함께 개인이나 그룹별로 세미나도 연다. 학생들이 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기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것은 글쓰기 통합과정(Writing Across the Curriculum)으로 아주 중요한 활동이다.


─교수들을 위한 글쓰기 과정도 있나
“교수들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과제를 낼 수 있을지 워크숍을 연다. 왜냐 하면 때때로 학생들에게 부여하는 과제물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과제를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사실 모든 교수가 자신이 글쓰기 도우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글을 잘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두 뛰어난 글쓰기 지도 기술을 보유한 것은 아니다.”


─과제를 낼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
“어떤 식으로 보고서를 쓰면 좋겠는지, 보고서에 어떤 내용을 담으면 좋겠는지를 알아듣기 쉽게 과제를 내야 한다. 질문 내용을 이리저리 꼬이게 하지 말고, 직설적이고 단순한 문체로 과제를 던지면 효과적이다.”


─교수들은 의무적으로 이 교육을 받아야 하나
“아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이용한다. 학생보다 더 열성적으로 배우는 교수도 있다. 학생들과 교수들은 한결같이 ‘잘 배우고 가장 오래 기억되는 것은 짤막한 시험 답안지 작성이 아니라 스스로 어떤 주제를 쓸 때’라고 말한다. 1970년대에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내가 쓴 보고서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특히 내가 싫어했던 수업 시간에 쓴 내용은 더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좋아하는 수업의 짤막한 답변 내용도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내가 진지하게 써 보았다면 제대로 학습을 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학문 연구 활동에서 글쓰기의 비중은
“글쓰기는 학문 그 자체다. 글쓰기는 교수들이 조교에서 교수가 되는 약 10년 동안 끊임없이 연마해야 하는 과정이다. 연구 성과를 글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승진하고 연구하는 모든 단계에서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는가. 글쓰기본부는 바로 이 같은 활동을 도와주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