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제23회 한국편집상 대상

중앙일보 이진수 차장 인터뷰


‐ 주로 어떤 면을 맡고 있나.
아 요즘은 디지털 데스크를 보고 있어서 종이 지면을 담당하고 있지는 않다.


‐ 디지털 데스크도 일종의 면이 아닌가.
하하. 어떻게 보면 지면일 수 있겠다. 중앙일보 홈페이지하고 앱, 네이버, 다음, 플립보드 등 포털과 온라인에 콘텐츠를 유통시키고 있다.


‐ 앱은 단순 콘텐츠 유통 등 단순 관리만?
지금 하는 일은 관리적 측면이 많다. 제목을 계속 올린다. 홈페이지와 앱에 올릴 기사를 큐레이션 한다. 업그레이드 등 기능적인 부분들은 개발팀이 따로 있다. 리디자인 등 업그레이드를 해야할 때가 오면 서비스 기획도 담당할 것 같다.


‐ 편집기자의 길은 어떻게 들어서게 됐나
2000년 세계일보에서 취재기자 생활을 했다. 당시 세계일보는 1년씩 편집부에서 근무하는 순환시스템이었다. 취재보다는 기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편집이 더 끌렸다. 지면이 내 영토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2004년 중앙일보로 왔고 지금까지 편집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이제는 디지털을 담당하고 있지만.


‐ 수상 작품이 멋있었다. 많은 노력이 담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멋진 1면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말해 달라.
처음에는 4가지 버전으로 만들었다. 미술기자는 물론 편집국장까지 편집국 전체가 달려들었다. 보통 큰 이슈가 있을 때는 편집국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 지면을 기획하곤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 됐을 때도 미리 3~4개의 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디자인 담당자와 취재기자들, 편집국장과 편집자들이 계속 스탠딩 회의를 한다. ‘지면을 이렇게 만들자, 저렇게 만들자’ 고 끊임없이 브레인스토밍을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아니. 헌법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판결문을 지면에 까는 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 다음 긴 헌재 판결문을 어디까지 요약할 수 있는지, 다음에 판결문의 내용이 어렵게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를 고민했다. 노무현 탄핵 때 헌재 판결문을 살펴봤다. 단어와 문장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 그래도 지면에 아이디어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박근혜 탄핵심판은 역사적 순간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어쩌면 가장 치욕적인 순간일 수도 있겠지만 국민에겐 가장 극적이고 긍정적인 순간일 수도 있으니 헌재 판결문을 최대한 살려보는 쪽으로 가자고 방향을 잡았다. 몇 자가 들어가는지 본문의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할지 미리 준비했었다. 일단 방향이 정해지니 어떤 사진을 써야할지 어떤 제목을 달아야할지 수월해졌다. 그런 부분들은 작은 부분들이니까. 판결문 맨 끝에 이정미 재판관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그 말이 울림이 컸었다. 그래서 ‘헌법이 파면했다’는 콘셉트로 갔다. 콘셉트가 잡히니 다음은 수월했다. 박 대통령 사진을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앞모습을 쓸지 뒷모습을 쓸지. 당시 청와대에서 따로 받은 사진들로 갈 것인지 스탠딩 회의를 열어 의견들을 나눴다. 디자인 쪽하고도 의견이 갈렸다. 나는 뒷모습의 사진으로 누끼를 따서 작게 가자는 입장이었고. 디자인은 그래도 얼굴이 약간 좀 제대로 나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회의에서 ‘어차피 박 대통령 얼굴을 모른 사람들도 없고 뒷모습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얼굴을 부각하는 것보다 메시지로 가자고 결정했다. 중앙은 시험판이 나오면 어느 쪽이 좋을지 같이 의견을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


‐ 참. 이 작품이 이달의 편집상에선 탈락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앙의 한 지인이 “왜 이런 작품이 이달의 편집상을 탈 수 없냐”며 내게 푸념을 늘어놨던 기억이 있다.
하하. 그랬나. 그 선배가 ‘올해의 편집상’에 또 내겠다고 했었다. 그때 “예선도 통과 못했는데 뭘 또 내냐” 그랬더니 알아서 냈더라. 지금은 그 선배가 고맙다. 


‐ 일하면서 궁합이 맞는 그래픽 기자가 있나.
있다. 이번에 같이했던 김호준 씨다. 과제가 주어졌을때 얘기하는 게 뭔지 서로 잘 알고 있었기에 재미있게 일을 했다.


‐ 중앙일보 편집부는 다른 부서랑 협업이 잘되는 편인가.
그렇다. 취재 쪽과도 관계가 원활한 편이다. 속칭 ‘야마’를 이렇게 저렇게 가지고 가자고 하면 서로 대화가 잘된다.


‐ 온라인에 몸담은 지는. 그리고 직책은.
만 4개월 정도 됐다. 직책은 디지털 편집 데스크다. 이혁찬 부장이 에디터를 맡고 그 밑에 신문 데스크와 디지털 데스크로 나눠져 있다. 그중에 디지털을 맡고 있는 것이다.


‐ 이석우 총괄 체제하에서 중앙일보는 어떻게 달라졌나. IT쪽 사람들에게 들어보면 아티클이나 텍스트 배열 등 가독성 측면에서 좀 더  유저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석우 총괄의 첫 미션은 디지털로 가기 위한 기초 체력을 만드는 일이었다. 확실하게 성과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 동안 신문이 머릿속에 박혀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힘들었을 것이다. 많은 저항 속에서도 기본 시스템은 잘 만들어 놨다. 그 바탕 위에서 시스템을 계속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인가
중앙은 실시간으로 기사마다 트래픽 수치가 모니터에 계속 뜬다. 그리고 디지털용 CMS인 ‘잼’을 만든 것 등 디지털 장치들을 많이 만들어 놨다.


‐ 얼마 전에 시진핑 관련 인민일보를 분석한 기사가 흥미로웠다. 신문에 등장한 시진핑 사진의 크기에 따른 권력 변화를 보여준 기사는 신선했다. 데이터가 풍부해야 추출해낼 수 있는 스토리. 그리고 짧은 시간에서 관련 자료들을 수집한 센스가 돋보였다. 
그런 것들은 디지털 전용 기사다. 디지털 전용 기사가 많이 늘어났다. 신문에서 소화하기는 힘들고 어렵지만 디지털에서는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장점이 많다. 함께 기사가 어떻게 디스플레이 되는 게 효과적인지 등 텍스트가 보여 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미지 사진 외에 ‘움짤’이라든지 gif 포맷 외에 다른 포맷들을 실험하고 테스트하고 있다.


‐ 디지털에서 PV(Page View)외에 다른 측정 지수들은 없나.
DRI(Deep Reading Index)지수와 인덱스 지수를 만들었다. DRI지수는 유저가 얼마나 기사에 몰입했는지를 보여준다. 트래픽 보다는 이 지수를 많이 본다.


‐ 유저들이 머문 시간을 측정하는 듀레이션을 의미 하는가? DRI 외에 다른 측정도구는.
그 기준이 몇 가지가 있다. 완독률이 있다. 기사를 스크롤바를 끝까지 내렸는지를 측정한다. 그리고 네이버에서 중앙일보 기사를 읽고 다시 중앙일보 기사를 하나 더 읽는 것을 측정하는 재순환율이 있다.


‐ 완독률은 고속도로의 구간단속처럼 시간을 재는 것인가. 너무 빨리 내리면 대충 읽었다고 판단하는 것인가?
어떤 면에서 보면 비슷하다. 여러 가지 측정지수로 유저들 반응을 살피다 보니 ‘유저들이 꼭 가벼운 기사만 원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설실에서 쓰는 기사들이 의외로 많이 읽힌다. 디지털에서도 충분히 깊은 기사로 승부할 수 있는 것이다. 홈페이지에서 잘 읽히는 기사가 있고, 네이버에서 통하는 기사가 있고, 모바일에서 통하는 기사가 있다. 그래서 플랫폼별로 출고전략을 신경 쓴다. ‘현장을 가다’ ‘퍼스펙티브’ 등 긴 글도 가독률이 꽤 높다. 


‐ 다른 신문사와 디지털 교류는 없나.
거의 만나 본적 없다. 옛날에는 신문에 있다 보면 기자들만 만나는데 여기서는 기술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많이 배운다. 


‐ 마지막으로 수상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독고다이 편집’을 고집했었다. 레이아웃부터 제목 토씨 하나까지. 모든 게 나만의 솜씨여야 했다. 그래야 만족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90년대 286 컴퓨터가 하루아침에 펜티엄급으로 진화할 순 없는 노릇이다. 머리는 굳어가고 습성이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훔쳤다. 아이디어를 모방하고 베꼈다. 디자이너와 협업하고 동료들과 토론한다. 소위 집단의 힘이다. ‘독고다이 편집’보다 ‘팀 편집’이 지속성이 더 있었다. 최초이거나 최고이거나. 늘 이 가치만을 지향한다. ‘헌법, 대통령을 파면했다’는 제가 아닌 중앙일보의 지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