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국편집기자협회 (edit@edit.or.kr)

사진설명 전국 9대 일몰지 중 하나인 삼천포 실안도로. 이곳은 실안 낙조로 유명한 6㎞의 아름다운 길이로 바다와 섬, 삼천포대교, 죽방렴과 등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삼천포 대표 관광지다.



이 도시가 먹는 법 <9> 사천

위로는 진주, 밑으로는 통영, 좌로는 광양·여수, 우로는 창원·마산 같은 유명 도시들 사이에서 사천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낯설다. 그런데 사천에는 국제공항도 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거리 먹을 거리가 넘쳐난다. 1413년에 사천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하지만 경상남도의 중심지 진주가 바로 위에 버티고 있던 탓에 오랫동안 진주의 영향이 짙게 남아있었다. 1995년 사천읍은 삼천포시와 통합해 사천시가 되었다.
사천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은 사천식 냉면집인 ‘원조 사천냉면’과 ‘재건냉면’이다. 같은 집안에서 하는 탓에 만드는 방법과 음식이 다 비슷하다. 돼지 살코기로 만든 맑은 국물이 독특한 맛을 낸다. 특히 꾸미로 올라가는 돼지고기 육전은 사천 냉면의 트레이드 마크다. 돼지고기 육전은 사천의 잔칫날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돈까스 비슷한 육전은 감칠맛이 특징이다. 육전을 따로 파는 집은 없지만 육전을 파는 식당은 많다. 사천의 냉면집에서는 타 지역의 수육처럼 육전을 반드시 낸다. 그리고 그 육전이 냉면 위에도 올라있다.
원조사천냉면과 재건냉면의 맛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현지인들은 이 냉면들을 사랑하지만 외부인들은 일반 냉면과 다른 맛 때문에 낯설어 한다. 최근 뜨고 있는 진주냉면의 아류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지금 진주냉면과는 다른 발전 과정을 거쳤고 식당도 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남해 바다는 사천읍 안쪽까지 깊게 들어와 있다. 선진리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쌓은 왜성터가 있다. 최근에 그 성들을 복원했다. 선진리성으로 가는 길은 봄에 절정을 맞는다. 벚꽃들이 길과 성안에 가득하다. 뭍 사이로 깊게 들어온 물에는 얼마 전까지 조개의 왕 백합이 지천으로 났다. 봄이 제철인 백합을 선진리 주변 식당들은 주로 죽으로 판다. 1960년대 남강댐 공사로 유입된 민물 덕에 백합이 많이 났지만 1990년대 진사공단 등이 생기면서 백합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백합죽을 먹을 수 있다.
사천과 통합된 삼천포는 사천보다 유명하다. 일제 강점기에 본격적으로 개발된 삼천포항은 경남 동부 최대의 어항이었다. 경남도청이 있던 진주와 가까운 것도 큰 역할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삼천포 주변의 바다는 해산물의 보고였다. 일본인들은 삼천포의 해산물들을 일본으로 실어갔다. 삼천포 바로 건너편은 사천대교로 이어진 사천시의 섬들과 남해군의 섬들이 길게 이어져있다. 다섯 개의 다리가 각각 다른 공법으로 지어져 ‘다리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곳의 경치는 삼천포 출신 시인 박재삼의 표현처럼 ‘울음이 타는’ 바다다. 전국 9대 일몰지 중의 하나인 실안도로와 다리와 섬들이 다 아름답고 붉다.
섬과 다리 밑을 흐르는 물살은 거칠다. 이순신장군의 해전이 이곳에서 이루어져 수많은 일본인들을 바다 물고기 밥으로 만들었다. 최근 들어 이곳에서 봄 미각의 절정 새조개가 많이 잡힌다. 새부리 모양을 닮은 검은색이 감도는 새조개는 달보드레하다. 사천대교 앞의 대방마을에는 새조개 샤브샤브를 판매하는 집들이 많다. 겨울에는 물메기를, 가을에는 전어, 여름에는 갯장어(하모)가 식탁에 오른다. 예전에 이곳은 야채밭이 있었다. 삼천포의 다양한 생선을 이 곳 사람들은 잡어(雜魚)로 통칭한다. 일일이 이름을 부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생선이 계절별로 다르게 잡히기 때문이다. 잡어를 대표하는 놀래미는 작지만 달다. 삼천포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이야기할 때 곧잘 ‘대방 상추쌈 놀래미하고 먹어봤나’라고 말한다.
삼천포항 뒤쪽의 노산공원은 삼천포의 상징이다. 노산공원 근처의 팔포회타운은 질 좋은 해산물들을 파는 횟집들이 즐비하다. 도다리쑥국하면 통영이 선두주자이지만 삼천포의 횟집들도 봄이면 도다리쑥국을 판다. 도다리쑥국보다 더 유명한 팔포회타운의 음식은 물회다. 잡어와 전복이 물회의 중심 재료다. 사시사철 시원한 물회 한 그릇이면 부러울 게 없다. 팔포회타운의 터줏대감인 ‘원조물회집’이 이름 그대로 삼천포 물회의 원조집이다. 이 집도 봄에는 도다리쑥국을 판다. 살아있는 커다란 참도다리 한 마리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주변에서 지천으로 나는 쑥과 봄동, 냉이, 쑥과 된장을 넣어 끓인 삼천포식 도다리쑥국은 진하다. 통영의 도다리쑥국이 된장 국물을 넣어 맑은 국이라면 삼천포 도다리쑥국은 진한 탕 같다.
회타운을 어슬렁 거리다 보면 봄이 제철인 털게도 있다. 남해군 주변에서 주로 나는 털게는 봄이 제철이다. 몸은 작지만 살로 채워진 털게는 달고 부드럽다. 재료가 워낙 좋으니 쪄서 먹는 게 일반적인 조리법이자 유일한 요리법이다.
팔포 회타운에서 삼천포항 방면으로 오분 정도를 걸어가면 항구 뒤쪽으로 식당가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는 삼천포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해산물정식을 파는 집들이 있다. 해산물정식은 해산물 천국이란 별명이 붙은 삼천포의 심장과 같은 음식이다. 해산물로만 구성된 한정식 한 상을 11,000원이란 저렴한 가격에 맛 볼 수 있다.
‘오복식당’와 ‘파도식당’은 해산물 정식의 맞수다. 오복식당이 살짝 말린 해산물이나 날 해산물을 조리해서 내는 반면에 바다회식당은 조리 안 한 날 해산물들을 주로 판다. 점심시간에 문을 열고 저녁 8시면 문을 닫는다. 술을 팔지만 손님들은 8시를 넘기지 않고 자리를 접는다. 산지의 질 좋은 해산물을 이렇게 저렴하게 맛있게 파는 식당들을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맘때 ‘파도식당’은 봄이 제철인 해산물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가자미 구이와 톳나물 무침, 새조개 데침과 병어회 같은 제대로 요리된 음식들을 맛 볼 수 있다. 삼천포 사람들은 술은 주로 ‘실비집’에서 먹는다. 술값을 내면 안주가 공짜로 나오는 형태는 경상도 해안가 도시들의 공통된 음식문화다. 삼천포항은 작은 도시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200여 개가 넘는 어물전들이 있다. 이곳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사서 시장 앞에 늘어선 초장집에 가면 일인분에 4,000원을 받고 회를 떠주고 반찬을 준다.
삼천포는 싱싱한 해산물로만 유명한 곳이 아니다. 다양한 건어물은 삼천포의 또 다른 자랑이다.
4월이면 거친 바다에 박힌 죽방렴에 몸에 상처하나 없는 멸치들이 든다. 이 멸치로 만든 은멸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명품중의 명품이다. 그리고 삼천포하면 떠오르는 아이콘은 쥐치포다. 한반도에서 쥐치가 모습을 감춘 1990년대 이후 쥐치포의 대명사는 베트남산이 되었지만 최근 쥐치가 다시 돌아오면서 삼천포의 국내산 쥐치로 만든 쥐치포도 만들어지고 있다. 쥐취포는 1960년대 초 삼천포에서 만들어진 건어물이다. 국내시장의 대부분을 삼천포 쥐치포가 장악하면서 삼천포는 쥐치포의 대명사가 되었다.
베트남산 쥐치포는 어린 쥐치를 이용해 만든 탓에 살집이 얇고 하얀색이 감돈다. 하지만 삼천포 쥐치포는 두텁고 붉은 색이 감돈다. 맛의 차이는 현저하다. 삼천포 쥐치포는 삼천포는 물론 전국에서 유일한 건어물 제조 방식인 화어(花魚)를 기반으로 탄생한 먹거리다. 화어는 일본의 건어물인 미림보시(みりん干)가 변형된 것이다. 미림보시는 일본의 대표적인 조미용 술인 ‘미림’으로 간을 해 말린 생선을 말한다. ‘보시’(干)는 말린 생선이란 뜻이다.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정어리였지만 고등어, 꽁치, 복어, 학꽁치, 쥐치, 보리멸 등이 사용되었다.
미림보시는 다이쇼(大正)(1912-26)시대 초기에 큐슈에서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정어리를 간장에 절인 후 말린 제품이었다. 이후에 간장과 함께 소금, 설탕, 조미액, 미림 등이 사용되면서 오늘날의 미림보시로 발전한다. 미림은 세금이 많은 식품이었다. 이 때문에 1931년 이름을 ‘사쿠라보시’로 바꾼다. 지금도 삼천포에는 사쿠라보시란 말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사쿠라보시는 삼천포의 어물을 이용한 화어로 변한다. 1960년대 초 화어 기술자에 의해 쥐치포가 만들어진다.
이전까지 쥐치는 생김새와 이름 때문에 어부들이 재수 없다고 버리던 생선이었다. 그러나 단맛이 나는 쥐치포는 아이들에게는 간식으로, 어른들에게는 최고의 술안주로 자리잡게 된다. 1970, 1980년대 쥐치포는 대한민국 국민 건어물로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국내 바다에서 쥐치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베트남산 쥐치포가 대신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삼천포에는 죽방멸치, 쥐치포와 더불어 보리새우 같은 명품 건어물도 있다. 봄 날 사천에 들르면 삼천포의 맛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사천의 봄은 단 어물로 시작되고 완성된다.

맛칼럼니스트 박정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