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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상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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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제26회 한국편집상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20-12-03 11: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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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95

    쫄지 말고 해 봐, 꽃 피워봐, 참 좋아


    최우수상 / 조선일보 서반석 기자



    “아빠 생일선물로 뭐 받고 싶은 거 있어?” 두 달 전 초등학생 딸아이가 대뜸 물었다. 매년 생일카드만 쓰고 때우던 녀석이 올해부터 용돈을 받기 시작하더니 나름 선심을 쓴다. 어떤 선물을 이야기할까 잠깐을 고민하다 “아빠 시집 한 권 사줄래”라고 말했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시(詩)라곤 혼나기 싫어서 학교 다닐 때 억지로 외운 뒤 단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다. 하지만 딸아이에게 ‘시집 읽는 멋진 아빠’로 보이고 싶은 욕심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어떤 시집을 사야 해?”라는 딸아이의 질문에 아는 시인이 떠오르지 않아 “네가 마음에 드는 책으로 사”라고 서둘러 둘러대며 자리를 피했다. 며칠 뒤 엄마와 서점을 간 녀석은 거금 1만3500원을 털어 나태주 시인의 시집 한 권을 사서 생일날 저녁 내게 건넸다.
    그리고 학창시절 손등을 때리던 국어 선생님의 날카롭던 플라스틱 자보다 무서운 딸아이의 숙제 검사가 매일 이어졌다. “오늘은 몇 페이지나 읽었어? 어떤 시가 좋았어?” 딸아이의 계속되는 성화에 못 이겨 강제 독서가 시작됐다. 매일 술집만 다니다 시집을 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러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짧은 시 하나. 제목은 풀꽃3. 내용은 이렇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 꽃 피워봐 / 참 좋아.
    이상하게도 이 짧은 시가 적힌 페이지를 쉽게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아마도 수많은 날 움츠리고 있었던 나의 모습이 그 행간 속에 비쳐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편집을 시작하고 숱한 밤을 자책에 지쳐 잠이 들었다. 회사에 나오면 어떤 기사가 와도 자신만의 목소리와 언어로 풀어내는 옆자리 선배들의 내공을 부러워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배달된 신문들을 보면서 난 왜 이런 제목을 생각 못 했을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다른 회사 편집기자들의 감각을 감탄하며 부끄러움 속에 하루를 또 시작했다. 편집기자가 된 지 십수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밤이면 나의 부족함을 탓하며 상처 입은 마음을 쓰디쓴 알코올로 소독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내가 편집기자를 하고 있는 건 순전히 내 곁에서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자란 후배 때문에 매일 회의시간 고통을 당하면서도 “야! 쫄지말고 하고 싶은 거 일단 던져봐”라고 말해주는 ‘제목 갑부 택진이 형’ 이택진 부장. 격일로 1면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나약한 나를 붙잡아주는 내 멘탈의 버팀목 전근영 선배. 술에 취해도 쑥스러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감사의 마음을 이 글을 통해 전한다. 그리고 선배들이 내게 해주었던 것만큼 나 역시 후배들이 힘들 때 잠시나마 걸터앉아 쉬어갈 수 있는 작은 그루터기라도 되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나처럼 밤잠을 설치는 편집기자가 있다면 다시 한번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 기죽지 말고 한번 편집해봐요, 꽃 피워봐요.

    첨부파일 조선서반석기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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